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노인이 생을 마감합니다.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는 다시 살아나고, 죽음에서 돌아온 노인을 둘러싸고 미스테리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처럼 노인은 점점 젊어지고 어려집니다. 중년의 자식들은 이런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노인(아빠)과 소통은 안 되지만 쓰면 곧 지워지는 ‘시간이 없다’라는 글귀는 무언가 절박함을 느끼게 하지요.
영화 ‘기브 뎀 - 사라진 자들의 비밀’(Give Them - Secret of the Lost)은 아이로서, 청년으로서, 누군가의 아빠로서 살 기회가 사라지고 그로 인해 모든 관계가 뒤틀려버린 세상을 그립니다. 낙태에 대해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그로 인해 태어나지 못한 사람과 연결될 수 있었던 모든 관계가 사라지는 세상을 보여줍니다. 노인의 절박함은 단순히 한 생명뿐 아니라 관계된 모든 생명을 지키라는 절규인 셈이지요.
낙태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합니다. 국내에선 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정으로 낙태죄에 대한 처벌이 효력을 잃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낙태된 태아의 사체를 유통시키거나 혹은 전문 업자가 처리하는 일이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끔찍하고 반인륜적인 일입니다.
어떤 이는 ‘임신 0주’라는 특정 시기를 커트라인(?)으로 삼기도 합니다. 그 이전에는 생명이 아니니까 낙태를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되묻습니다.
“수정된 배아를 두면 무엇이 되는가!”
“그것이 말(馬)이 되고 소가 될 가능성이 0.00001라도 있는가!”
수정된 배아는 오로지 인간이 아니면 그 무엇도 되지 않습니다. 수정 순간부터 배아는 100 인간이 될 가능성만 지니고 있습니다. 낙태는 ‘태아살인’이라는 교회의 입장은 그래서 단호하고 확고합니다.
영화 ‘기브 뎀’은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삶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음에 고마움을 느끼게 합니다. 동성애, 이혼 등 현대교회가 마주한 많은 과제들에 대해 저는 교회가 좀 더 유연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낙태는 교회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반생명적 행위임이 분명합니다.
1990년대 초 모자보건법을 토대로 낙태반대 운동이 크게 일었던 적이 있습니다. 주교회의와 각 교구, 기관들이 힘을 모아 ‘태아발 배지 달기’ 같은 실천운동도 잇따랐습니다. 30년 전 일입니다. ‘살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태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교회가 나서야 합니다.
- 그동안 월간 꿈CUM과 함께해주신 전대섭 님께 감사드립니다.
글 _ 전대섭 (바오로, 전 가톨릭신문 편집국장)
가톨릭신문에서 취재부장, 편집부장,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대학에서는 철학과 신학을 배웠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바보’라는 뜻의 ‘여기치’(如己癡)를 모토로 삼고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