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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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79위 시복 100주년… 김대건 신부 유해와 증명서 공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김대건 신부유해와 증명서 100년 만에 공개순교자 공경·교회 유산 가치 되새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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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복 100주년을 맞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세 명의 선교사와 한국인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와 유해증명서가 공개됐다. 주교회의는 2일 성 앵베르 주교(1796~1839), 성 모방 신부(1803~1839), 성 샤스탕 신부(1814~1839), 성 김대건 신부(1821~1846)의 유해와 함께 유해증명서를 공개했다.


 
성 앵베르 주교·성 모방 신부·성 샤스탕 신부의 머리카락과 성 김대건 신부의 발뼈 조각이 담겨 있는 유해함. 주교회의 미디어부 제공


공개된 유해는 머리카락과 뼈 조각 일부다. 유해증명서에는 ‘1925년 12월 16일’이라는 날짜가 명시돼 있어 같은 해 7월 5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된 시복식 이후 5개월 뒤 발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국천주교사료목록화사업’ 과정에서 확인된 유해와 증명서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보관해오다 지난 2월 19일 더 체계적이고 안전한 보존을 위해 주교회의에 기증했다. 100년 전 유해가 담긴 유해함과 유해증명서가 온전한 상태로 보존된 사례는 드물며, 이번 공개는 한국 천주교회의 순교자 공경 전통과 교회 유산의 가치를 되새기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성 앵베르 주교, 성 모방 신부, 성 샤스탕 신부,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와 유해 증명서. 주교회의 미디어부 제공


주교회의는 “펜으로 작성된 유해증명서의 중간 부분이 흐릿해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유해함에 모셔진 유해가 ‘앵베르 주교·모방 신부·샤스탕 신부와 머리카락과 김대건 신부의 발뼈 조각 일부’인 것은 확실하다”고 밝혔다. 유해증명서에 따르면, “공인된 장소에서 추출된 유해를, 수정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금된 은제 유해함에 경건하게 안치하여 잘 닫고, 붉은색 비단 끈으로 묶어 인장으로 봉인했다”고 기록돼 있다. 문서에는 발급자인 서울대목구장 뮈텔 주교 서명과 함께 공식 인장이 찍혀 있으며, 상서국장 조제 신부의 서명도 있다.

이들은 파리외방전교회가 파견한 조선대목구 사제들로박해가 한창이던 1836~1837년 조선에 입국해 사목했다. 한국인 성직자 양성과 복음 전파를 위해 애쓰던 중 체포되어 1839년 9월 21일 한강 새남터에서 함께 순교했다. 이들은 1925년 7월 5일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시복된 후 1984년 5월 6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서울 여의도에서 시성됐다.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신부는 외국인 성직자의 입국로를 개척하던 중 1846년 6월 백령도 해역 순위도에서 체포됐으며, 헌신적으로 사목활동을 이어가다 사제수품 1년여 만인 1846년 9월 16일에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주교회의는 유해증명서의 일부 필사 내용이 산화로 인해 판독이 어려워 전문가 자문을 받아 보존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주교회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국고 보조를 받아 2017년부터 ‘한국천주교사료목록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6년 말까지 진행되는 이 10개년 사업은 1784년부터 1962년까지 생산된 한국 천주교 관련 사료를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천주교 사료 디지털 아카이브’(가칭)를 구축해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다.

이지혜 기자 bonapet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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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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