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복 100주년 기념미사 봉헌「기해·병오박해 자료집」 봉정바티칸 선교박람회 100주년전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왼쪽)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1925년 바티칸 선교박람회에 출품된 한국 교회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성 베네딕도회가 서울에 설립한 기술학교인 ‘숭공학교’ 학생들이 제작한 기와집 모형으로, 바티칸 민족학박물관에서 대여한 유물이다.
정기 희년인 1925년 바티칸에서 한국 교회가 누린 영광이 100년 만에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에서 재현됐다.
서울대교구는 5일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콘솔레이션 홀에서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주례로 기해·병오박해 순교자 79위 시복 100주년 기념미사를 거행했다. 한국 교회는 1925년 7월 5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순교자 79위가 시복되면서 첫 복자를 배출했다. 조선 시대 국가 공식 처형장이었던 서소문성지는 이들 복자 중 41위가 치명한 한국 교회 최대 순교성지다.
아울러 바티칸 선교박람회 개최 100주년을 기념하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특별기획전 ‘Anima Mundi(아니마 문디, 세상의 영혼들)’도 이날 개막했다. 서울·대구·원산대목구 등 당시 한국 교회 전체가 수집해 보낸 유물과 예술품 27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다. 선교박람회는 국권이 피탈된 일제강점기에도 한국 교회가 ‘개별 교회’로 인정받는 중요한 계기였다.
정 대주교는 시복 기념미사 강론을 통해 “박해의 환난 속에서도 주님을 향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순교자들은 죽음까지 이겨내는 참된 희망으로 열매를 맺었다”며 “이 뜻깊은 날에 서울대교구도 또 하나의 열매인 「기해·병오박해 자료집」을 주님께 봉헌한다”고 밝혔다. 「기해·병오박해 자료집」은 정부 공식 기록물에서 기해·병오박해 관련 내용을 발췌해 번역·정리한 첫 사례로, 이날 미사 중에 봉정식이 거행됐다.
아울러 정 대주교는 “한국 교회가 국권을 잃은 역사 속에서도 일본 교회의 일부가 아닌 독립적 주체로서 우리 문물을 출품했다는 점에서 바티칸 선교박람회는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부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 사례를 언급하면서 우리 근대사 안에서 한국 교회의 공헌과 역할에 의문을 표하거나 축소하기도 한다”며 “100여 년간 박해로 수만 명이 순교했던 한국 교회로서는 공식적인 항일 투쟁을 하긴 어려웠겠지만, 세상에 존재를 알리기 위해 이처럼 눈물겨운 노력도 했다는 점을 우리는 헤아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미사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와 교구 사제단도 공동집전했다. 왜관수도원은 특별기획전 ‘아니마 문디’를 위해 소장 중인 「양봉요지」를 대여했다. 독일인 퀴겔겐(성 베네딕도회) 신부가 지은 첫 한글 양봉 교재로, 현재 세계 유일본이다.
정 대주교와 박 아빠스는 ‘아니마 문디’ 전시물을 함께 관람하며 100년 전 선배들의 노고를 기렸다. 특히 눈에 띄는 유물은 바티칸 민족학박물관에서 대여한 정교한 ‘기와집 모형’이었다. 성 베네딕도회가 서울 백동(혜화동)에 설립한 기술학교인 ‘숭공학교’ 학생들이 제작했다. 이밖에 △초대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가 직접 찍고 인쇄한 사진과 사진기(대구대교구 사료실 제공) △박람회 기부 명단인 ‘라마박람회 조선출품자 물품금품씨명부’(한국교회사연구소 소장) 등도 전시됐다.
이학주 기자 goldemouth@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