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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꿈 CUM] 삶과 영성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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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혜화동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성당 봉사를 하게 되면 여러 가지 인간적 문제들로 인해 대인관계의 상처는 물론 신앙생활에도 부정적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성당의 구역장으로 봉사하던 베드로 씨(가상인물)는 구역반원, 상임위원들과의 관계가 원만치 않아 불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는 성격이라 매사에 해야 할 말을 하고 살아왔기에 주변인들로부터 불편한 시선을 감당해야만 했다. 그러나 점차로 밀려오는 공동체로부터의 소외감에 봉사를 그만두고 냉담을 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성당에서 주최한 구역별 친목 운동회가 열리게 되었다. 본당에서는 각 구역에 똑같이 보조금 30만원을 지원해 주기로 하였다. 베드로 씨는 이 결정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였다. 자신의 구역은 다른 구역에 비해 신자 수가 많은데 성당에서 이런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고민 끝에 베드로 씨는 본당 신부님을 찾아가 인원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자신의 구역은 다른 구역에 비해 지원금을 더 주셔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하였다.

본당 신부님은 이 말을 듣고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고, 베드로 구역장의 말을 참고해서 배려해 보겠다고 대답하였다. 베드로 씨는 본당 신부님이 자신의 말에 동의한 것으로 생각하고 이 사실을 구역원들에게 알렸다. 그러면서 자신이 신부님을 설득하여 지원금을 더 타내게 되었다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다. 베드로 씨는 이 기회에 자신의 실추된 리더십을 되찾고 구역원들에게도 인정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은근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막상 지원금을 받고 보니 다른 구역과 같은 금액이었다. 베드로 씨는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성당을 나갈 수가 없었다. 본당 신부님이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거나 기만했다고 생각하니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이내 베드로 씨는 봉사를 그만두고 냉담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 실오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상담을 신청하였다.

공평하다는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가? 과연 나의 공평성의 기준이 객관적이라는 사실을 어디에서 확인받을 수 있는가? 공평한 세상은 우리 모두의 바람일 수 있다. 하지만 공평하다는 개념과 기준이 서로 다르다면 공평한 세상은 한낱 신기루일 뿐일 것이다. 하느님은 공평하시다고 하지만 세상에는 아직 불평등이 만연하고 상선벌악에 대한 믿음과 기대도 점차로 희석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베드로 씨는 적어도 교회만큼은 공평하고 정의로워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교회를 불신하게 된 것은 물론 자신의 신앙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다.

공평함의 기준은 여러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본당 신부님은 인원수가 많은 구역이 오히려 인원수가 적은 구역보다 행사를 치르는 데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성당에서 구역별 행사를 치르는 데 들어가는 경비는 인원수와 상관없이 100여만원 정도로 산정되었다. 그렇다면 지원금을 제외한 나머지 경비를 구역원들이 감당할 때는 인원수가 많은 구역이 훨씬 더 적은 금액을 분담하게 된다. 베드로 씨의 논리라면 실제로 자신의 구역은 다른 구역에 비해 지원금을 덜 받아야 마땅하다. 사실 베드로 씨의 구역은 상대적으로 배려를 못 받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배려를 받았다고 볼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사제는 공동체의 화합과 일치를 위한 기준을 두고 공평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베드로 씨의 구역은 다른 구역에 비해 경제적인 수준이 높은 구역에 속했다. 따라서 본당 신부님은 베드로 씨 구역이 다른 구역을 위해 지원금을 반납하는 미덕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사건을 이해하는 관점이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베드로 씨는 본당 사제에 대한 미움의 감정이 점차로 송구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베드로 씨는 자신이 생각하고 느낀 감정에 대해 수치스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베드로 씨의 관점에서는 누구라도 그러한 감정을 지니게 될 것이며 그 생각이 완전히 잘못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베드로 씨는 자신과 타인에 대해 좀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음을 깨닫고 겸허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글 _ 박현민 신부 (베드로,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사목 상담 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상담심리학회, 한국상담전문가연합회에서 각각 상담 심리 전문가(상담 심리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일상생활과 신앙생활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되는 전인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 성필립보생태마을에서 상담자의 복음화, 상담의 복음화, 상담을 통한 복음화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상담의 지혜」, 역서로 「부부를 위한 심리 치료 계획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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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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