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에 미군 군종 장교로 참전해 중공군 포로수용소에서 동료 장병들을 돌보다 희생된 가경자 에밀 카폰(1916~1951) 신부의 이름을 딴 ‘카폰 경당(Kapaun Chapel)’이 평택 미군기지에 마련됐다.
주한미군은 6월 5일 경기 평택시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에 있던 ‘프리덤 채플’을 ‘카폰 경당’으로 새로 명명했다고 밝혔다. 미군은 그간 카폰 신부를 기려 미국 안팎의 군시설과 학교 등에 기념비를 세우거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왔지만, 그의 이름을 딴 경당을 조성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캠프 험프리스 기지 사령관 라이언 워크맨 대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카폰 군종 대위의 삶은 한 개인의 용기, 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동료 병사들에 대한 사랑에 관한 것”이라며 고인을 기렸다.
카폰 신부는 군종사제(대위)로 1950년 7월 한국에 온 뒤 6·25 전장에서 미사를 집전하며 전우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죽어가는 병사들의 마지막을 위해 기도하다 중공군에 잡혀 평안북도 압록강변 벽동수용소에 갇혔다. 카폰 신부는 수용소에서 모진 학대와 탄압을 받으면서도 동료 병사를 간호하고 식량을 나누는 등 사랑을 실천했고, 35세이던 1951년 5월 23일 이질과 폐렴으로 선종했다.
그 공로로 2013년 미국에서 명예훈장(Medal of Honor), 2021년 한국에서 태극무공훈장을 받는 등 양국 최고등급 무공훈장을 받았다. 특히 실종 70년이 지난 2021년 하와이 국립묘지에 묻혀 있던 유해 속에서 극적으로 신원이 확인돼 고향 캔자스주에서 성대한 귀향·안장 행사가 열렸다. 카폰 신부의 선행이 널리 알려지면서 소속 교구인 미국 캔자스주 위치타교구는 카폰 신부에 대한 시복시성을 추진 중이다. 교황청은 지난 2월 그를 가경자로 선포했다.
‘카폰 경당’은 모든 이의 ‘믿음’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미8군 공보팀 최정원 팀장은 “전 세계 미군 부대 내 건물들은 각각 일련번호와 정식 명칭을 부여해 관리하고 있어 건물 명칭을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군은 가톨릭·개신교·유다교·이슬람교·불교 등 여러 군종병과를 운영하고 있다”며 “군종병과가 종교적 배경을 넘어 병사와 가족, 군무원들의 신앙생활을 돕는 만큼 카폰 경당은 신앙인들을 위한 성스러운 공간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미 한국대사관 국방무관으로 근무했던 한국 콜럼버스 기사단 신경수(아우구스티노) 의장은 “미군은 종교시설을 통칭해 채플이라 부르는 만큼 주한미군 종교 시설에 ‘한국전의 성인’이라 불리는 카폰 신부 이름이 부여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앞서 주한미군은 2022년 5월 27일 에밀 카폰 신부의 철모를 형상화한 추모비를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 기지에 세운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