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 거주하는 어머니 사만 마타르가 영양실조에 걸린 아들을 안고 있다. 바티칸 미디어
가자지구 식량 위기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1년 9개월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가자지구 주민들은 끼니 등 기본 생활조차 이어갈 수 없는 기아 위기에 빠졌다. 외부 민간 지원도 끊기면서 주민 4분의 1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교회와 국제사회는 즉시 분쟁을 멈추고 평화가 깃들기를 호소하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지속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무력 충돌로 7월 28일 기준 가자지구 주민 6만 34명이 숨지고 14만 5870명이 다친 것으로 파악했다.
전쟁의 참상은 살아있는 주민들의 삶도 파괴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로 민간 보급이 끊겨 기아가 극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스라엘은 3월부터 하마스가 구호품을 탈취한다는 명분으로 가자지구 물자 반입을 전면 차단했다. 5월에 휴전의 물꼬가 터지며 봉쇄를 일부 해제했지만 6~7월 식량은 이미 바닥난 상태였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전쟁 발발 후 영양실조로 인한 사망자가 어린이 89명을 포함해 154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유엔 기관 및 국제 구호단체, 각국 정부 등이 결성한 통합식량안보단계분류(IPC)는 7월 29일 “가자지구에서 현재 기근으로 나타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IPC는 5가구 중 최소 1가구가 식량 부족이 극심하면 기근으로 판단하는데, 가자지구 인구의 24, 즉 네 가구 중 한 가구꼴로 심각한 굶주림에 처해있다고 파악했다.
최근 교황청 공보지 바티칸뉴스가 전한 사진에서도 전쟁의 참혹한 실상이 전해졌다. 이 매체의 부편집장 마시밀리아노 메니케티가 전한 사진에는 사만 마타르라는 여성이 영양실조에 걸린 아들을 안고 있다. 아이의 등은 살이 없어 척추뼈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고, 엄마의 눈은 허공을 응시할 뿐이다. 한 아버지가 기아로 숨진 아이의 시신을 들고 있는 모습도 게시됐다. 메니케티 부편집장은 “아이들은 소리 없이 죽음을 맞는다. 아이들은 더는 울지 않는다. 노인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어른들은 더 이상 걷지 않는다. 심장은 뛰지 않는다”고 역설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7월 27일 주일 삼종기도에서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인도적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이곳의 민간인들은 굶주림에 짓눌려 있으며 폭력과 죽음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유엔 상임옵저버 가브리엘레 카치아 대주교는 7월 30일 “두 국가 해법이 평화를 유지하는 데 답이 될 수 있다”며 “교황청은 심각한 인도주의 위협에 우려를 표한다. 즉각적인 휴전, 인질 석방, 민간인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사회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유화 정책을 펼쳐왔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 “이스라엘 당국이 구호품 배분 책임을 맡아야 한다”면서 가자지구로의 식량지원을 촉구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영국과 프랑스는 종전 협정이 없을 경우 오는 9월 유엔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겠다며 이스라엘에 대해 무력 감행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군은 7월 30일 가자지구의 한 검문소에서 식량 배급을 기다리던 주민들에게 총격을 가해 50여 명을 숨지게 하는 등 참극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자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바티칸 뉴스에 따르면 이스라엘 인도주의 및 평화주의 단체 베첼렘과 인권을 위한 의사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 사회의 파괴를 목표로 하는 대량학살 정권임에 틀림없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