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행운동본당(주임 김영식 신부)에서는 주일마다 특별한 전례가 진행된다. 대성전 한켠, 손끝이 분주한 신자들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수어 통역을 통해 청각장애인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 수어 통역 동아리 ‘손끝사랑’(회장 김윤숙) 회원들이다. 이들은 26년째 주님의 기도를 비롯해 성경 봉독, 강론, 공지사항까지 미사 전례의 모든 순간을 수어로 통역하며 손끝으로 하느님 사랑을 전하고 있다.
손끝사랑은 1999년 낙성대본당(현 행운동본당) 시절 수화반으로 시작됐다. 본당 신자 중 농인 부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당시 신희준 보좌 신부의 건의로 수화반이 개설됐다. 이후 타지역 농인 신자들이 미사에 참여하면서 교중 미사 중 수어 통역이 시작됐다. 가톨릭농아선교회의 교육 지원을 받아 활동해온 손끝사랑은 농인 신자들이 미사에 온전히 참여하도록 ‘미사 통역자반’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행당동성당에서 수어 통역사 두 명이 교중 미사에서 수어를 하고 있다.
손끝사랑의 활동은 청각장애인들이 신앙의 갈증을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에는 성동구 에파타성당이 청각장애인을 위한 성당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사는 신자들은 오가기가 쉽지 않다. 손끝사랑의 활동은 이러한 신자들에게 신앙의 목마름을 채워주고 있다. 이들은 2014년 AYD·KYD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여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한 폐막 미사에서 수어 통역을 맡기도 했다.
교중 미사 수어 통역을 위해서는 7주간의 교육을 통해 전례 수어를 체계적으로 연습해야 한다. 최근 제5기 미사통역자반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지난 6월 교중 미사 수어 통역사 임명장을 받은 오건도(야고보)씨는 “수어를 할 때는 나를 지우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영식 주임 신부는 “장애인 주일학교가 많아 수어 미사도 많을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수어 통역 미사가 거의 없어 놀랐다”며 “성당 입구 경사로나 엘리베이터만 생각했지, 청각장애인의 전례 접근에 대해선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교구 차원에서 수어 통역 봉사자 양성을 위한 체계적 지원과 더불어 지역 거점 본당별로 수어 미사가 확대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코로나 이후 농인 신자 수가 줄었지만, 손끝사랑 회원들은 매주 연습을 통해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본당 신자들도 자연스럽게 수어에 익숙해졌고, 주님의 기도는 다 함께 수어로 노래한다.
동대문구에 사는 농인 윤영란(율리에타)씨는 “청각 장애인들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느님 말씀을 깊이 있게 듣고 싶고 교회 내 신앙 교육도 참여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가까운 곳에 수어 통역 미사가 있는 본당이 없어 지하철을 세 번 갈아타 이 성당에 나오고 있다”며 “행운동본당처럼 지구별로 수어 통역을 해주는 본당이 생기면 좋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