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 자녀 대상으로 건강한 한끼 1000원에 제공
서울대교구 항동본당이 차린 어린이 식당이 어린이 손님들로 가득하다. 주임 박명근 신부가 배식하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야채는 조금만 주세요.”(어린이)
“많이 먹고 쑥쑥 커야지. 더 먹어~.”(봉사자)
서울시 구로구 연동로 170. 올해 5월 새 성전 축복식을 봉헌한 항동성당(주임 박명근 신부). 평일 오전 11시 30분임에도 성당 1층은 금세 아이들로 가득 찼다. 삼삼오오 모여든 아이들은 보조가방을 멘 채 식판을 들고 배식대 앞에 섰다. 메뉴는 오리고기부터 장조림·콩나물·계란국·과일 꼬치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들로 채워졌다.
아이들은 학원에서 막 온 아이와 곧 학원에 갈 아이들로 나뉜다. 그 사이 시간에 성당에 들러 친구들과 점심을 함께한다. 목에 건 휴대전화로 반찬이 수북이 담긴 식판 사진을 찍어 부모에게 전송하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한 이곳에는 ‘항동 어린이 식당’이란 현수막이 걸려 있고, 요즘 아이들에게 인기인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배경음악이 흘러나온다.
서울대교구 항동본당이 차린 어린이 식당이 어린이 손님들로 가득하다.
김대윤(초6) 어린이는 오전에 친구와 농구를 한 뒤 땀을 흘리며 밥을 먹으러 왔다. 식사 후 3시간을 쉬고 영어·수학 학원에 간 뒤, 저녁 6시에는 합기도 학원에 간다고 했다. 김군은 “방학 때 혼자 점심 차려 먹기 귀찮다”며 “내년 방학에도 성당에서 어린이 식당을 운영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단아(초4) 어린이는 지난 겨울방학 때 엄마가 차려놓은 돈가스와 볶음밥을 혼자 데워 먹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배달 음식이 집으로 오기도 했다. 김양은 “지난 방학에는 혼자 심심하게 텔레비전을 보며 점심을 먹었고, 그 전 여름방학에는 할머니 댁에 가 있었다”며 “여기서 해주시는 음식은 다 맛있다”고 했다.
서울대교구 항동어린이식당 봉사자들이 아이들에게 밥과 반찬을 퍼주고 있다.
항동본당이 차린 ‘어린이 식당’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여름방학 동안 혼자 점심을 해결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건강한 한끼 식사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7월 28일 문을 열었다. 아이들의 방학이 끝나는 8월 19일까지 운영한 뒤, 올해 연말까지 주 2회 석식을 제공하기로 했다. 식대는 한끼에 천원이다.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가 진행하는 본당 사회복지 공모지원사업에 ‘아동 한끼 나눔사업’으로 응모해 선정됐다. 이곳에서 식사하는 60명 아이들 중 90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다.
항동은 보금자리주택지구 개발로 신축 아파트가 대거 공급된 지역으로, 구로구에서도 아이들 비율이 높은 편이다. 본당 사회복지분과장 최재희(베드로)씨는 “교육과 돌봄은 주민들의 주요 관심사”라며 “신설 본당으로서 지역 주민들이 겪는 어려움에 함께하는 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명근 주임 신부는 “방학 때 맞벌이 부부 자녀의 식사가 문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성당이 아이들에게 방학뿐 아니라 배고프면 언제든 들어올 수 있고, 안전하게 놀 수 있는 놀이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선교 목적이 아니라 아이들을 그 자체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성당에서 놀아주고 웃는게 큰 선물입니다. 요즘 아이들 보기가 힘들어요. 특히 성당에서요.”
이지혜 기자bonappetit@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