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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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향숙 평화칼럼] 대모의 유산

송향숙 그레고리아(생활성서사 교재연구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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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창세 3,19)는 아담의 형벌을 몸소 구현이라도 하듯, 10여 년 전까지 나는 해야 할 일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덕분에 ‘집착’이라는 무덤을 스스로 팠고, 그 무덤에 갇혀 자기혐오에 빠졌다. 내가 만든 지옥이었다. 거기서 탈출하려고 사직서를 내고 우연히 연락해 온 옛 동창의 연결로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으로 도망쳤다.

순전한 우연으로 그렇게 가 닿은 곳이 미국에서 가장 큰 육군 기지가 있다는 텍사스주 킬린이었다.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 군 관련 업무나 사업을 하며 살아가는 군사도시였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미군 가족도 상당해 한인도 육천 명 정도 그곳에 살았고, 한인 성당과 한인 마트·한식당 등도 있었다.

그곳 한인 성당의 자상하신 김세을 신부님의 배려로, 나는 낯선 땅에서 햇살처럼 명랑한 동갑내기 에스더를 만났다. 그 친구 집에서 두 달여 머무는 동안 에스더는 물론 그보다 몇 살 아래인 대모 마리아 부부와도 따스한 정을 나누게 되었다. 에스더는 마리아를 깍듯이 “대모님”이라 불렀고, 마리아의 남편 야고보를 깍듯이 “대부님”이라 불렀다. 그 호칭이 어찌나 자연스럽고 당연하던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대모님, 대부님”이라는 호칭이 나올 정도였다.

마리아와 에스더는 여러 면에서 서로 달랐지만, 그들은 취미와 봉사활동과 일상을 나누었다. 교포라서 한국 책 사랑이 더 각별한 걸까, 그들은 한 사람이 어떤 책을 보고 좋다고 여기면 서로 소개하고 나누며 대화했다. 책 이야기로 한 시간 넘게 통화하는 건 다반사였다. 글자를 보는 일을 거의 평생 해 왔지만, 나는 저들처럼 독서의 즐거움을 나눈 적이 있었던가?

회계 일을 하는 마리아는 비교적 일찍 퇴근해 성당에서 봉사했다. 머리가 복잡할 때면 요리를 한다는 유자격의 수준급 한식 요리사 마리아는 식복사 없는 그곳 사제의 식사를 마련하는 봉사를 주로 했고, 에스더도 그 일을 거드는 등의 봉사를 했다.

마리아 부부와 에스더는 자주 만나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즐겨 불렀다. 유일한 관중이 된 첫날 나는 귀를 의심했다. “저 정도 실력으로 어떻게 음악을 즐길 수 있지?” ‘음악 분야의 최하층민’이라 스스로 낙인찍은 나보다 조금 나을 뿐인데, 이들은 마치 콘서트에서 공연이라도 하듯 하며 즐겼다. 숙제하듯 피아노와 오르간을 연습했던 나는 한 번도 이들처럼 즐겨본 적이 없었다. 실력을 갖춰야 그것을 누릴 수 있다는 건 내 고정관념일 뿐이었던 것이다.

사람에 대한 깊은 배려가 몸에 밴 투철한 봉사 정신의 마리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특히 자신의 대녀에게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자세를 일상에서 보여주었다. 한 번은 어떻게 그렇게 봉사할 수 있느냐고 묻자 마리아는 “제 대모님의 발꿈치도 못 따라가요”라고 했다. 그들의 지극한 봉사의 자세는 대물림된 ‘대모의 유산’이었다. 삼대에 걸친 아름다운 대물림에 마음이 뭉클했다. 한때 종신 부제직을 꿈꾸었던 야고보는 에스더에게 ‘자원하여’ 교리 강연을 하곤 했다.

이들 ‘교과서적’ 대부모 대자녀 관계를 보면서, 눈에서 멀어지면서 마음에서도 멀어진 나의 대모와 대녀가 떠오르곤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대모녀 친구들과 줄곧 마음으로 함께하면서 다소 늦었지만 내가 만든 무덤에서 나는 한 걸음씩 걸어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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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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