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80년 전, 우리나라가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 국권을 되찾은 날.
광복절은 민족의 해방이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출발점이 됐는데요.
광복 80주년, 독립을 위해 헌신한 천주교 신앙인들을 김정아 기자가 소개합니다.
[기자]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명가로 불리는 안중근 가문.
안중근 가문은 천주교 신앙을 바탕으로 10여 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했습니다.
그 가운데 안명근 야고보는 사촌형 안중근 토마스와 함께 신앙과 민족의식을 키웠습니다.
서간도에 무관학교를 세우려 군자금을 모으다 160여 명과 함께 체포돼 15년 동안 옥고를 치렀고, 석방 뒤에도 중국으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이어가다 1927년 길림성에서 순국했습니다.
정부는 안 야고보에게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서상돈 아우구스티노는 대구 국채보상운동 발의자이자 대구지역 초대 명도회 회장을 지냈습니다.
서 아우구스티노는 고조부 때부터 이어온 신앙을 지키며, 대구대목구 설립 당시 1만 평 부지를 기증하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대구지역 천주교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서 아우구스티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습니다.
한영규 베드로는 조부 때부터 신앙을 이어온 집안 출신으로, 1919년 3월 29일 고향에서 주민 100여 명과 직접 만든 태극기를 들고 만세 시위를 벌였습니다.
징역 10개월의 옥고를 치른 한 베드로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습니다.
중국인 두 번째 추기경 우빈 주교는 광복군과 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했습니다.
350만 중국 천주교인에게 한국 독립 후원을 호소하고, 외교 현장에서 임시정부의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정의의 사자'로 불린 우 주교는 1969년 우리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습니다.
일제 강점기 한국 천주교회는 종교 분리 원칙을 택했지만, 이름 없는 수많은 신자가 묵묵히 조국의 독립을 위해 나섰습니다.
<조한건 신부 /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흔히 독립운동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비판받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실상은 이렇게 개별적으로 많은 이들이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이 많거든요."
대한민국 광복 80주년.
조국의 독립을 위한 이들의 헌신과 희생을 오늘날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CPBC 김정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