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지하 성당에 차려진 유경촌 주교의 빈소를 찾은 신자들이 추모 미사와 연도에 참여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서울대교구 유경촌 주교의 선종 소식에 고인의 따뜻한 성품을 추억하며 애도 분위기가 일고 있다. 유 주교가 지난해 주님 성탄 대축일 당시 병상에서 서울대교구 명일동본당 신자들에게 보낸 손편지도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15일 선종 당일, 가톨릭인터넷 굿뉴스를 비롯한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 인터넷 온라인상에서는 신자들이 유 주교의 천상 안식을 기원하며 애도의 뜻을 전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이경상 보좌주교는 페이스북에 “늘 낮은 데로 임하며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 가까이 머물면서 당신 자신도 그렇게 소박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사시던 분. 많이 그리울 겁니다”라며 유 주교의 선종 소식을 전했다.
의정부교구장 손희송 주교도 페이스북을 통해 “함께 길을 걷던 그가 나보다 먼저 홀연히 하느님 곁으로 떠났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손 주교는 “우리는 유 주교님이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났다고 슬퍼하지만, 하느님은 ‘달릴 길을 다 달려서 면류관을 쓸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신듯 하다”며 “달려할 길은 ‘거리’가 아니라 ‘깊이’가 아닌가 싶다”고 적었다. 이어 “누구보다도 열심히, 성실하게, 복음에 따라 살고자 애쓰고 발버둥을 치며 살았기에 하느님께서는 ‘이젠 됐다’라고 하시면서 성모승천 대축일에 그를 불 마차에 태워서 성모님의 인도로 하늘로 불러 올리셨다고 믿고 싶다”고 추모했다.
그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사제들도 유 주교와의 추억을 회고하며, 안타깝고 슬픈 마음을 달래고 있다. 유 주교는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약 10년간 신학대학 교수로서 사제들을 양성해왔다.
진슬기(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 부국장) 신부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유 주교가 기타를 메고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연주하며 사제들과 함께 노래하는 영상을 올려 유 주교에 대한 그리움을 자아냈다. 진 신부는 “주교님은 언제나 늘 먼저 대가와 주시던 선배 신부님이자 은사님”이라며 “양업관 철다리 밑에 화단을 가꾸시고 늘 기타를 둘러매시던 낭만파 주교님”이라고 회고했다.
이용현 신부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유경촌 주교의 선종 소식을 알린 게시글.
이용현(인천교구 모래내본당 주임) 신부도 유 주교의 선종 소식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따뜻한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작은 예수님으로 계셨던 유 주교님께서 하느님 품으로 가셨다”면서 “주교님의 천상영복을 기도드린다”는 추모 글을 올렸다. 이 신부도 유 주교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부른 ‘걱정말아요, 그대’ 영상을 올렸고, “유 주교님도 아무 걱정 마시고, 천상에서 잘 쉬시길 바란다”는 추모의 댓글들이 올라왔다.
아울러 유 주교가 지난해 병상에서 서울대교구 명일동본당 신자들에게 보낸 손편지가 다시금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명일동성당은 지난 2013년 유 주교가 주교 서품을 받기 직전에 주임으로 사목하던 본당이다.
지난해 주님성탄대축일 당시 병상에서 유경촌 주교가 서울대교구 명일동본당 신자들에게 보낸 손편지. 독자 제공
유 주교는 손편지에서 “처음 제가 주교품을 수락할 때의 각오는 ‘사람들의 발이나 닦아주자’였다”며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시는 복음 장면이 눈에 들어왔고 그 구절이 저의 주교 사목표어가 됐다”고 전했다. 이어 “주교품을 받은 지 10년도 더 지났다”면서도 “그런데 사람들의 발은 제대로 닦아주지 못했다. 고통 속에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의 발도 닦아주지 못한 채 10년 세월이 훌쩍 지났다”고 회고했다.
당시 투병 중이던 유 주교는 신자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8차 항암치료를 진행하고 있다”며 “이제는 많은 분이 제 병의 치료를 위해 오히려 제 발의 더러움을 씻어주고 계신다. 이 분들이 주님의 치유를 전해주시는 천사들임을 깨달았다. 감사할 뿐이다”고 전했다.
유 주교는 “제가 지은 기도 빚이 쌓여가니 그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다시 일어서겠다”고 의지를 보였지만, 편지를 쓴 지 약 8개월 만인 15일, 선종했다.
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