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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함께 울고, 함께 걸어주신 목자- 유경촌 티모테오 주교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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뵌 적은 없었습니다. 다만 언론을 통해, 스치듯 마주한 모습 속에서 저는 한 목자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선종 소식을 접하고, 저는 조용히 명동성당을 찾았습니다. 한 시간 넘는 땡볕 아래 줄을 서며, 마음속엔 단 하나의 바람만 있었습니다. 


한 번이라도, 그분 앞에 잠시라도 머물고 싶다는 바람.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그 마지막 모습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었고, 인간적인 슬픔을 누르기엔 너무나 아까운, 너무나 귀한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겸손의 덕을 삶으로 살아내신 분이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그마저도 하느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며 묵묵히 감당해 가셨던 사람. 주교직이라는 무게 앞에서도 그 무게를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겸허히, 조용히, 오히려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눈물 흘리셨고, 억울한 이들의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셨고, 작은 민초들의 삶에 다가가 무료 급식소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일용할 양식을 날라 주셨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분의 삶은 말보다 기도가 먼저였고, 기도보다 실천이 앞섰습니다.


복음의 본질을 꿰뚫는 깊고 단순한 강론, 군더더기 하나 없이 삶과 연결된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믿음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잊을 수 없는 것은 그분이 바라보는 사목의 눈길입니다.


2009년 용산 철거민 참사, 2014년 세월호의 비극, 2022년 이태원 참사, 고공 농성 중인 노동자들의 외로운 싸움. 그 어떤 위기와 고통의 현장에도 주교님은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때로는 철탑 위로 올라가셨고, 때로는 기도와 눈물로 함께하셨으며, 늘 침묵 가운데 기도로 그 곁을 지켜주셨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파격’이라 불렀지만, 그분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길이었습니다. 주교복을 담은 가방을 들고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하느님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삶의 한가운데로 조용히 걸어 들어가셨던 분. 그분은 우리가 무너질 때도, 희망을 잃을 때도. 늘 우리와 함께 계셨던 분. 그래서 그분은, 단지 ‘주교님’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목자셨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신 지금, 세상은 다시 혼란스럽고 고통의 현장은 여전히 많지만 그분의 걸음은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습니다.


세속의 명예보다 섬김을 택하시고, 권위보다 기도를 앞세우셨으며, 자신보다 하느님과 이웃을 더 깊이 바라보셨던 분. 그분의 삶은 이 시대가 다시 배워야 할 목자의 본모습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참 목자의 여정을 마치고, 하느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실 것입니다. 


수많은 양을 만나기 위해 낡은 프라이드 경차를 손수 운전하셨던 그분의 진정한 청빈과 겸손, 마지막 유언조차 “더 오래, 가난한 사람들과 사회적 약자들 곁에서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그분의 고백은 이 땅 위 어떤 말보다 더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그분의 온 삶을 관통한 성덕의 증언인 마지막 말씀을 기억하며 슬픔 대신 기도드립니다. 주교님, 부디 평안히 쉬소서.


글 _ 노강 아가타(시인, 서울대교구 한강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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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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