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유경촌(티모테오) 주교가 성모 승천 대축일 새벽, 가족과 사제·수도자들의 기도 속에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 “가난한 사람들 곁에서 더 함께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는 유 주교의 마지막 고백은 그의 삶과 사목의 지향을 가장 잘 드러내는 증언이었다.
유 주교는 담도암 판정 후 긴 투병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주교로서의 사목적 소명을 이어갔다. 특히 서울대교구 사회사목 담당 교구장대리로서 한마음한몸운동본부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를 이끌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이 되었다. 그는 정기적 후원을 이어가는 한편, 매주 노숙인 야간 순행에 동행해 성사를 집전하고 묵주를 나누었으며, 혹한기에는 자신의 옷을 벗어 건네는 따뜻한 나눔을 실천했다. ‘명동밥집’을 세우고 배식 봉사에 직접 나선 모습은 많은 신자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고위 성직자임에도 항상 “아유, 제가 뭐라고. 보좌주교 나부랭이가~”라고 말하며 항상 자신을 낮췄던 유 주교였지만, 사회적 약자를 위한 그의 언행은 결연함으로 가득했다. 유 주교는 ‘서로 발을 씻어 주어라’라는 사목표어 그대로 소외된 이들을 찾아다니며 사회사목이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복음이 세상 속에서 숨 쉬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유 주교의 선종은 한국교회에 큰 슬픔이지만, 그가 남긴 삶의 흔적은 더 큰 빛으로 다가온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한 그의 발자취는 우리 모두에게 신앙인의 길이 무엇인지를 묻게 한다. 이제 남은 이들이 그의 뜻을 이어받아 가장 작은 이들의 곁에 서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추모일 것이다. 유 주교가 하느님 품 안에서 평화롭게 잠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