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자가 붙들었던 두 가지 주제는 ‘시노달리타스’와 ‘아우구스티노’였다.
하나는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의 여정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은 연구자와의 인터뷰였다. 그는 한국교회가 고유한 사목 환경 속에서 이 결실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을지를 학문적으로 탐구했다. 다른 하나는, 병마와 싸우며 집필을 멈추지 않았던 한 사제의 유고를 통해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고백’이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 불려 오는 과정을 기사로 옮긴 일이었다.
이 두 이야기를 이어준 공통의 주제는 ‘회심’이었다. 아우구스티노는 젊은 날 방황과 집착 속에서 하느님을 멀리했지만, 마침내 회심을 통해 참된 자유를 얻었다. 그리고 유고의 저자가 던진 물음도 단순했다. “왜 지금 아우구스티노인가?”
이 물음은 결국 우리 각자의 삶 안에서 “왜 지금 회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 총회 「최종문서」 역시 이행 단계의 교회가 단순한 제도 개혁이 아니라 ‘관계의 회심’을 요청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50항 참조)
‘회심’에 대해 다시 묻게 된다. 그것은 성인들만의 특별한 체험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 작은 선택 속에서 이루어진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사랑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꽃을 흩뿌리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작은 희생 하나, 눈빛 하나, 말 한마디, 하찮아 보이는 사랑의 행위들이 곧 회심의 꽃이 된다는 것이다.
시노드가 요청하는 ‘경청의 교회’, 아우구스티노가 들려주는 ‘고백’은 바로 이런 일상 안에서 구체적으로 살아날 때 힘을 가질 것 같다. 우리 모두의 회심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삶을 바꾸는 작은 걸음에서 시작됨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