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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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과 ‘막내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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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은 소문에 불과했다. 물질이 의식을 규정하고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하며 종교는 아편이라는 소아병에 걸린 얼치기 운동권 학생에게 그는 하나의 소문이었다. 외려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며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고 외친 「공산당선언」의 결구가 확신의 대상이었다.


혁명을 꿈꾸며 광장과 거리와 뒷골목을 순회하는 생활은 대학원까지 이어졌다. 겉멋에 빠진 시인 지망생을 벗어난 것은 다행이었지만, 연구자의 길도 부실하기만 했다. 취업할 가망이 없어 진학한 게 대학원이었으며, 의탁할 곳이 필요해 찾은 곳이 대학원이었다. 총학생회장이 되어서도 원생들의 연구 환경과 강사들의 처우 개선에 노력하기보다는 전두환-노태우 구속이 훨씬 중요한 과제로 보였다. 그 무렵 하느님은 아직 너무 멀리 계셨다.


그러므로 냉혈의 활동가라고 호언하던 자가 세례를 받는 데에는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뜻밖에도 방송사에 취직해 직장인이 되고, 결혼을 하여 아이를 두고, 엄친을 여의어 사람살이의 허무를 느꼈음에도 교회를 찾아가는 길을 몰랐다. 아내는 장모님을 잃고 세례를 받고, 아이들이 유아세례를 받은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은 맹목적 이념만으로는 단 한 치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은 그날 전국의 모든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그 순간이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신호와 같았다. 가톨릭 신자도 아니었으며 명동성당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던 나는 기사들을 스크랩하기 시작했다. 한 매체는 아예 전체를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해맑게 웃는 김 추기경의 사진을 1면에 실은 바로 그 화면을 오래도록 보존하기 위해 다른 많은 기사까지 버리지 않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의 선종을 슬퍼하는 신자와 비신자들의 각양각색 표정들과 끊임없이 줄을 잇는 ‘자발적’ 조문객들의 마음을 전하는 길고 긴 이별을 채집하는 것이었지만, 내게는 다른 어떤 거룩한 메시지보다 소중한 구원의 소식이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이제 더는 미루지 않겠다’는 다짐이 끓어올랐다. ‘하나의 소문’이었던 김수환 추기경은 그렇게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길로 나를 이끌어 주었다.


김 추기경을 추모하는 기나긴 행렬을 보면서 진정한 혁명은 부정적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무력까지 불사하는 원한 맺힌 분노가 아니라 사랑에 있음을 깨달았다. 진정 폭력을 넘어서는 힘은 사랑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화염병을 던지지 않았고, 짱돌을 던지지 않았고, 각목을 휘두르지 않았던 김 추기경이 그토록 많은 이의 가슴에 따뜻한 위로를 주고 떠났다는 사실이야말로 ‘진짜 혁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 가정의 막내 신자가 되었다. 한번은 네 식구가 묵주반지를 낀 손들을 모아 사진을 찍어 보았다. 크기도 다르고 색깔도 조금씩 다른 반지가 부조화의 조화를 이뤘다. 가족들이 서로의 안위를 염려하며 힘을 모으듯, 이제는 격렬한 투쟁과 싸움이 아니라 기도로써 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글 _ 김재홍 요한 사도(시인·문학평론가, 가톨릭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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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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