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를 낚는 어민들 사이에는 ‘섬화’ 라는 말이 있다. 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은 낯선 용어다. 거센 태풍이 조류에 영향을 주면 바다가 뒤집히는 현상을 가리키는데, 바람이 걷히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흙탕물이 맑아져 대어가 든다.”(유민지, 「운의 심리학」, 쌤앤파커스, 2023 에서)
섬화라는 말이 참 매력적이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을 통해 환골탈태와 천지개벽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희망이다. 섬화라는 말이 예수님의 부활과 닮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바로 희망이다.
희망은 힘내서 살아갈 수 있는 동기부여이고 동력이 된다. 코로나19가 지났는데도 주변은 여전히 힘들다고 한다.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해서 고공행진 중이다. 좋은 일들만 많았으면 좋겠는데 그것 역시 생각처럼 잘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섬화현상이 필요한 이유이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견디고 이겨내면 기쁨이 찾아온다는 희망을 갖는다.
이 기쁨과 희망에는 공식이 있는 듯하다.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는 아픔을 먼저 맛보아야 한다. 희망을 만나기 위해서는 절망과 먼저 만나야 한다. 찬란한 빛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먼저 짙은 어둠을 지나야 한다.
예전에는 집에 정전되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비상시를 대비해서 집에는 초가 한 개 이상씩 있었다. 갑작스럽게 정전이 된 상황에서 촛불을 밝혔던 기억이 난다. 작은 초 하나로 방을 환하게 밝힐 수 있었다. 나는 갑작스럽게 정전이 만들어놓은 그 어둠이 싫었다. 답답했다. 그렇게 어둠의 시간이 흘러 다시 전기가 들어오면 너무 좋았고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정전이 발생해도 반드시 전기가 복구된다는 희망은 내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희망이 이루어졌을 때의 기쁨은 바로 감사함에서 비롯된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죽음의 절망을 이겨내시고 부활의 희망을 보여주셨다. 나에게 예수님 부활이 기쁨과 희망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감사함이 빠져있기에 그렇다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나를 위해 죽으셨다. 나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예수님이신데, 나 대신 목숨을 바치신 생명의 은인에게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백번 천번 만번을 감사드려도 부족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섬화현상을 이웃이 느낄 수 있도록 예수님 부활을 온몸으로 느끼는 감사함을 세상에 전염시키며 살아가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