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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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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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나마 문학 공부를 제대로 하겠다며 회사를 나온 지 7년째다. 그 사이 학위를 받았고, 문학평론가가 되기도 했다. 한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배우며 보람을 찾고, 작은 봉사로 큰 위안을 얻는 신앙생활도 이어가고 있다. 배부른 돼지가 아니라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는 소박한 꿈은 이뤘지만, 불비한 여건을 불안해하며 기도하는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등단 전후 소장(少壯) 시절에는 세상을 바꾸는 시의 힘을 믿었고, 그렇기에 골방에 틀어박힌 외로운 투사가 되어 세계와 대적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몸은 사무실에 두었지만, 정신은 언제나 시심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언제나 시는 높고 빛나는 데 있지 않고 낮고 어두운 곳에 기거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단 한 편의 우뚝한 시를 얻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다.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허기를 두려워하지 않겠다던 다짐은 눈앞의 현실 앞에서 갈수록 연약해지고 있다. 논문과 평론을 쓰고, 시를 받아 적는 일이 문학 열망의 표현이 아니라 호구책이 되었다. 글쓰기를 가르치고 출판물 교열을 하고 간간이 공연을 연출하는 일이 더는 여흥이 아니다. 기도는 기도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는 시구와 같이 시인은 재능을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을 견뎌내는 사람이다. 시는 몇몇 표현론적 기예로 도달할 수 있는 예술이 아니라, 도저한 생의 무게를 견디고 견디다 마침내 분출하는 어떤 비명과 같은 것이다. 수백수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시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사무치게 절실한 깨달음이 내장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배고프지만 배고프지 않으며, 외롭지만 외롭지 않다. 시인은 넘치는 풍요 속에서 살 수 없으며, 그것을 누리려는 자는 시인이 될 수 없다. 시인에겐 ‘가진 것’이 오히려 해로운 독약이다. 시적 “자아(moi)의 참된 대립은 비-자아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le mien)”(가브리엘 타르드)이다. 이것이 시인의 운명이며, 이것을 견뎌내야 시인이 될 수 있다. 얼마나 당당한가. 얼마나 자부심 넘치는 일인가. 나는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시인이 되었고, 그 운명을 견뎌내고 있다.


그렇다. 이제야 진짜 시인이 된 것 같다. 퇴직한 지 7년 되어서야 참다운 시인의 길은 어떠해야 하는지 깨닫게 된 것 같다. 아침기도로 시작하여 묵주기도를 거쳐 저녁기도로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 기도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기도를 필요로 하는 주변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기도문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느님, 몸이 아픈 모든 이들을 도와주소서.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을 도와주소서.



글 _ 김재홍 요한 사도(시인·문학평론가, 가톨릭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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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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