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종 브뤼기에르 주교(1792~1835)는 초대 조선대목구장이다. 하지만 한국교회 신자로서 교회사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브뤼기에르 주교가 한국교회사에서 갖는 의미를 잘 모를 수도 있다.
이승훈(베드로)이 1784년 중국에서 세례를 받으면서 시작한 한국천주교회가 대목구로 설정된 것은 1831년 9월 9일의 일이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조선대목구 설정과 동시에 초대 대목구장으로 임명됐다.
생각해 볼 것이 있다. 1831년이라는 시점이다. 이때는 한국교회가 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다. 조선에 있는 사제와 신자는 언제 관헌에게 체포돼 순교의 길을 걸을지 알 수 없었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초대 조선대목구장이 됐다는 것은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는 중국 대륙을 걸어 자신의 사목지인 조선에 들어오려다가 끝내 조선 땅을 밟지 못하고 1835년 10월 20일 중국 마자쯔(馬架子)에서 선종하고 말았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목숨을 걸고 가고자 했던 조선 땅에 온 때는 조선대목구 설정 100주년이 되던 1931년이었다. 9월 24일 그의 유해가 당시 경성대목구 주교관에 안치됐고, 10월 15일 명동대성당에서 장례미사가 봉헌된 후 같은 날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됐다.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는 브뤼기에르 주교 시복 과정의 하나로 8월 22일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대상 장소는 브뤼기에르 주교 유해가 거쳐 간 명동대성당 일대와 용산 성직자 묘지였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조선 땅과 교우들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예수님이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이었고, 브뤼기에르 주교를 시복시성 해야 할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