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27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송향숙 평화칼럼] 유경촌 주교님이 남기신 책 두 권

송향숙 그레고리아(생활성서사 교재연구팀 팀장)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출판 일을 오래 하다 보니 마음의 빚을 지는 일이 적지 않다. 책을 내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남을 때가 많은데, 반대로 원치 않는 분을 설득해 책을 내고는 오히려 내가 계속 죄송스러운 경우도 있다. 유경촌 주교님이 바로 후자의 경우다.

베네딕토 16세 교황 대담집을 출간할 때였다. 한글 번역 원고가 독일어 원문만큼이나 난해해서, 당시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이자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 소장이셨던 유경촌 신부님께 간절히 도움을 청했다. 그 바쁜 와중에도 신부님은 성실한 학생처럼 꼼꼼히 번역을 다듬어 주셨다. 돌려받은 원고의 여백마다 빼곡히 적힌 볼펜 글씨가 가득했다. 엄청난 수고였을 텐데도 “이건 교수님이 직접 하신 것 같지는 않아요. 대학원생들을 시키셨나?”라고만 하셨다. 사실상 모든 문장을 새로 쓰다시피 하셨지만, 책에는 ‘감수자’로만 이름이 올랐다.

주교님의 첫 저서는 「21세기 신앙인에게」(2014년, 가톨릭출판사)였다. 주교로 임명되셨지만 단행본이 거의 없으셔서, 그동안 발표하신 논문 중 일부를 엮어 책으로 내자고 제안 드렸다. 사람들에게 주교님의 사상을 알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교님은 “아유, 그게 뭐 도움이 되겠어요”라며 완곡히 거절하셨다. 그래도 끈질기게 설득해 결국 출간에 이르렀다.

논문의 딱딱한 문체를 조금 부드럽게 다듬었을 뿐, 내용은 온전히 주교님의 것이었다. 그런데도 출간 후 주교님은 이 책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등불을 켜서 함지 속”(마태 5,15)에 두신 셈이다. 기자들이 인터뷰를 요청하면 “그 책은 출판사에서 낸 거예요”라고만 하셨다. 다만 어느 단체에서 70여 권을 구입하며 모두 사인을 부탁했을 때는, 바쁜 일정에도 한 권 한 권 정성껏 사인해 주셨다.

주교님의 마지막 책은 「우리는 주님의 생태 사도입니다」(2022년, 생활성서사)였다. 첫 번째 책에 싣지 못했던 생태 관련 논문들을 출간하고 싶었지만, 주교님의 반응이 두려워 망설였는데, 대표 수녀님께서도 이를 바라셔서 다시 추진할 수 있었다. 원고 중 일부를 보완해 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주교님께서는 강론까지 추가로 보내 주셨다. 처음 보는 적극적인 모습에 놀랐다.

책 출간 후 생태 관련 책 2권의 북콘서트를 cpbc TV 방영과 오프라인 행사로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주교님께서는 끝내 TV 출연을 사양하셔서, 주교님의 책 북콘서트는 오프라인으로만 진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북콘서트 당일, TV 방영분 촬영 시간이 예상보다 훨씬 길어지면서,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주교님의 강연 시간이 크게 줄어드는 일이 벌어졌다. 죄송한 마음에 어쩔 줄 몰랐던 내게 주교님께서는 이런 문자를 보내주셨다. “존경하는 편집장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특별한 내용이 없는 강의, 잘하지도 못해 폐가 되지 않았기를 바랄 뿐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주님 강복을 빕니다. 유경촌 올림.” 주교님의 겸손하심에 나는 늘 당황스러웠다.

그 후 영명일을 앞두고 작은 선물을 준비해 경비실에 맡기려 했더니, “주교님께 혼납니다. 절대 선물 안 받으세요”라며 경비 아저씨가 손사래를 치셨다. 이젠 널리 알려졌듯이, 주교님의 삶은 끝까지 가난과 겸손으로 일관되셨다.

주교님의 이 책들은 우리에게 남겨 주신 중요한 유산으로 느껴진다. 그 유산이 우리 삶 속에서 열매 맺기를, 그리고 주님 안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쉬기를 간절히 바란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08-27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8. 27

시편 9장 2절
주님, 제 마음 다하여 찬송하며 당신의 기적들을 낱낱이 이야기하렵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