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커다란 잔치가 벌어졌다. 신바람 난 국악 악단의 가락에 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고운 한복차림의 고전 무용단원들의 멋들어진 춤사위가 더욱 흥을 돋운다. 운동장 옆에 마련된 H군의 조리팀에서 풍겨내는 녹두전 부치는 기름 냄새가 커다란 밥차에서 내뿜는 밥 냄새와 어우러져 군침을 돌게 한다. 직장일 만으로도 힘겨운 제자들이 나섰다. 노인요양원에 계시는 300여 명의 어르신들을 위로하자고 마련된 잔치였다. 몇 주간을 토요일마다 만나 생각을 짜낸 자리였다. 흙냄새 풀냄새와, 따뜻한 햇볕 한번 쬐는 것이 소원이라는 어르신들을 생각하며 마련하는 계획이니 힘이 절로 났다.
날짜가 정해지고, 장소는 ○○사관학교 운동장으로 교섭이 끝났다. 각처에 제자가 있으니 매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행사가 끝날 무렵 어르신들은 주름잡힌 손으로 제자들의 손을 꼭 잡으시며 “소원 풀이했수. 고마워요” 하시며 울먹이신다.
나에게는 비밀지갑이 하나 있다. 경로 잔치가 끝난 얼마 후 제자 몇이 찾아왔다.
“선생님! 저희도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에 작은 힘이나마 거들고 싶습니다, 여기 우선 조금밖에 모이지 않았지만 앞으로 조금씩 힘을 보태겠습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저축통장과 도장까지 불쑥 내민다. 통장주는 3학년 4반이었다. 사양하거나 거절할 틈도 주지 않았다. 멀리 지방에 내려간 J군까지도 참여하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선행이 벌써 20년을 넘기고 있다. 그동안 갖가지 사연도 많았다. 어느 봄날 불우이웃 돕기로 본당에서 마련한 반찬을 배달하러 언덕 위에 자리한 할머니 댁을 찾아갔다. 텃밭을 갈고 있는 할머니 곁에 손자가 징징거리며 울고 있다. 손자를 달래며 연유를 물었다. 할머니는 금새 흙 묻은 손이 몇 번이고 눈으로 간다.
“수학여행비를 달라기에 어쩌면 좋으냐 했더니 저렇게 종일 울고 섰답니다.” 비밀지갑의 가치를 발휘할 기회다. 손자를 불러 곁에 앉혔다.
“이 돈은 내 제자들이 모아준 것으로 너에게 빌려주는 것이다. 다음에 네가 훌륭하게 되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으로 갚아야 한다.”
손가락을 걸며 약속을 했다. 녀석은 연신 눈물을 닦으며 ‘감사합니다’로 답한다.
아이는 주일마다 할머니 손을 잡고 미사참례 후 나를 기다렸다가 수줍게 인사를 하고 달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