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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리겐슈타트(Heiligenstadt)를 거닐며

[월간 꿈 CUM] 편안한 꿈CUM _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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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에서 잠시 지내던 어느 날, ‘성스러운 도시’라는 이름의 하일리겐슈타트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트램을 타고 베토벤이 거닐었던 하일리겐슈타트의 ‘베토벤강’ (Beethovengang)으로 갔다.

나무 가득한 숲속. 실개천을 따라 난 좁은 길에는 계절을 맞은 아름다운 꽃들이 있었다. 시냇물 소리, 새 소리 사이로 한 마리의 다람쥐가 지나갔다. 그 소박한 자연의 충만함 한가운데를 한 사람이 뒷짐을 지고 걷고 있었다.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외모. 

키도 작았다. 그 뒷모습에는 깊은 외로움과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아! 귀가 점점 들리지 않는구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시냇물 소리, 바람소리….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여인의 속삭임을 이젠 들을 수 없구나.’

하일리겐슈타트는 베토벤이 유서를 작성한 곳이기도 하다. 그곳의 작은 숲속 ‘베토벤강’. 귓병을 앓던 베토벤은 이곳을 거닐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았다. 평생 독신이었던 베토벤은 많은 여인을 사랑했지만 결혼을 허락한 여인은 없었다. 그는 아마 죽는 날까지 완성하지 못한 사랑에 목말라했을 것이다. 서서히 다가오는 몸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을 안고 베토벤은 하일리겐슈타트의 숲속을 거닐었고, 그 안에서 많은 작품이 탄생했다.

교향곡 제6번 ‘전원 F장조 작품 68번’(1808년)은 소리가 아닌 눈과 가슴으로 이 숲의 정경을 그려낸 작품이다. 1악장에서 아름다운 숲을 만나는 설렘을 현악기로 담아냈으며, 2악장 시냇가에서, 3악장 농부들의 모습, 4악장 폭풍우, 5악장 목동의 노래를 담았다. 다른 교향곡과 달리 5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폭풍이라는 고난 뒤에 찾아온 진정한 전원의 평화를 드러내고 있다. 삶의 고통을 전원의 음악 안에서 승화해낸 것이다.

그의 9개 교향곡 중 ‘전원’은 회화적인 묘사가 아닌 자신 안에 스며있는 고통과 평화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교향곡을 탐색하다 보면 점점 청력을 잃어가는 공포의 순간에 온전히 신이 주신 삶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연과 자신의 관계를 음악으로 아름답게 그려낸 것이다. 그 고통을 승화시킨 베토벤의 평화가 그리워서일까.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베토벤이 거닐던 하일리겐슈타트, 지금은 ‘베토벤강’ (Beethovengang)이라 이름 붙여진 이 숲을 거닐며 베토벤을 추억한다.

하느님은 전원 속에서 나를 쉬게 하신다. 시편 구절이 떠올랐다. 주님은 파란 풀밭에 나의 몸을 뉘어 주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신다.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주실 것이다. 베토벤도 고통 속에서 이런 기도를 바치지 않았을까.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시편 23,4) 

글 _ 김화수 (유스티나, 수원교구 분당구미동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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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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