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말 공산주의가 붕괴한 이후,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문화·경제는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세계 곳곳은 한쪽에서는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다른 한쪽에서는 전통적 종교 가치와 마주하며 그 긴장을 고스란히 체감하고 있다. 교회 역시 국가가 아님에도 이러한 긴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공공 미디어 영역 가운데 언론을 살펴보면, 기자들이 직면한 도전은 실로 다양하다. 무엇보다도 즉각적인 성과를 좇는 치열한 경쟁, 소위 ‘신속성의 마법’이 존재한다. 여기에 ‘정보 과잉’이라는 문제도 뒤따른다. 넘쳐나는 정보는 소화하기 어렵고, 미디어는 전화를 통한 연결과 TV 화면의 상시적 존재로 우리를 ‘즉각적인 이웃’으로 만들어 압축된 세상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런 친밀감을 조장하는 기자들이 동시에 혐오 발언, 반이민 정서, 전쟁의 폭력까지 유통하는 현실은 명백히 모순적이다.
기자의 직업적 소명은 ‘비난이 아니라 알림’(고발이 아니라 탐사)에 있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지만, 많은 기자들은 ‘비난’을 택한다. 그 길이 훨씬 더 화려하기 때문이다. 언론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특정 종파나 이념적 관점이 아니라 보편적 가치에의 개방성이다. 다원주의에 대한 수용, 고통받는 인류에 대한 연대, 정부 결정 과정의 투명성이 그 대표적인 가치로 꼽힌다.
‘스토리’의 가치는 모든 미디어의 핵심이다. 영화와 TV뿐 아니라 모든 매체에서 서사의 힘이 그 가운데에 있다. 과거에는 성탄, 사순, 부활과 같은 전례 시기가 이야기의 토대를 제공했지만, 오늘날 세속적 분위기는 성경이 갖고 있는 서사의 힘을 잊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교회는 이야기 대신 ‘해설’을 내세웠다. 도덕주의적 강론과 교리문답이 자리를 차지하면서, 가르침은 비인격적이고, 판단적이며, 추상적인 것이 되었다. 그 결과, 크고 작은 비극과 구원의 이야기를 담은 성경은 여전히 동시대인들에게 닫힌 책으로 남아 있다.
어제의 그리스도교 사회가 직면한 도전은 신앙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였고, 답은 계명에 대한 충실함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도전은 자유를 어떻게 경험할 것인가에 있다. 현대의 소비주의 문화는 무수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충동, 기분, 모방에 기초한 하찮은 선택일 뿐이다.
현대인 다수에게 교회는 책임 있는 자유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교회는 단지 전통에 충실하라는 요구만 반복할 뿐이다. 선택의 교육학은 마련되지 않았다. 이냐시오 로욜라가 그의 영신 수련에서 보여주듯, 식별과 올바른 선택의 길을 안내하는 지혜는 충분히 연구되지 못했다. 그 결과 존재론적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어떻게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지킬 것인가? 어떻게 자유를 가르칠 것인가? 언제 순종하고, 언제 저항할 것인가?” 오늘날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은 TV 시트콤과 연속극에서 더 쉽게 얻어진다.
부유한 제1세계 사회는 ‘과잉 소통’일까? 아마도 ‘과잉 매개’ 혹은 ‘미디어 부국’(media-rich)이라고 부르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미디어 부국’과 ‘미디어 빈국’이라는 용어는 일방향적 정보로 가득 차 있지만 사상과 감정을 교환하는 능력은 취약한 사회를 가리킨다.
많은 제1세계 사회는 정보와 데이터에는 강하지만, 관계에 있어서는 빈약하다. 기술적 이점을 지닌 미디어 부국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의사소통 방식은 빈곤하다. 소통은 단순히 행동과 결정을 위한 데이터 제공을 넘어서, 관계의 네트워크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네트워크는 수평적이고 평등할 수도 있으나, 동시에 불평등하고 착취적일 수도 있다. 슬프게도 제3세계 사회 다수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며, 특히 소수자에 대해 봉건적이고 억압적인 구조를 유지한다.
앞으로를 내다볼 때, 두 가지 심각한 질문이 제기된다. 첫째, 다원적이고 세속적인 사회에서 합의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최소한의 동의란 무엇인가? 이 물음은 낙태, 마약과 향정신성 물질 사용, 시민의 권위와 공적 저항에 관한 논쟁과 직결된다. 둘째, 교회의 미디어 정책을 어떻게 재배치할 것인가?
오늘날 사회는 자유주의를 구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문화적·정치적 상대주의가 지배하는 방임적 사회가 되거나, 특정 종파가 협소하게 해석한 성경에 따라 통치하는 근본주의 사회가 되기 쉽다. 결국 핵심은 교회의 미디어 정책을 어떻게 ‘재배치’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는 수많은 문화적·정치적 변수 때문에 결코 간단히 답할 수 없는 문제다.
글 _ 미론 페레이라 신부
예수회 사제로 평생을 기자 양성 등 언론 활동에 힘써 왔다. 인도 하비에르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소장을 지냈으며,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라 크루아(La Croix) 등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