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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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진리, 그리고 생명…소화 데레사에게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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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와 대학생 시절 두 번이나 시도하고도 끝내지 못한 소화 데레사의 자서전. 올해 시성 100주년을 맞아 8월 22일 열린 가르멜 수도회 한국 관구 학술대회에 간 것은 오래된 호기심을 마무리하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대강당을 가득 메운 인파 속에서 나는 입석으로 겨우 서 있었다. 생명윤리에도 이만한 관심이 모이면 좋으련만 - 이라는 생각이 스쳐 갔다. 

 

그날 나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97년 소화 데레사를 교회 박사로 선포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가 말한 진리와 자유의 관계를 떠올렸다. 더불어 소화 데레사의 ‘하느님을 향한 시선’이 분석과 평가에 머무는 오늘의 생명윤리를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발표를 들으며 두 대목이 유난히 마음을 잡아끌었다. 하나는 ‘자기성찰의 자의식이 분석과 평가를 넘어선다’라는 점, 다른 하나는 성녀의 하느님을 향한 시선이다. 나는 종종 학문적 생명윤리가 분석과 평가에 머문 채 더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본다. 심리와 행위를 계량화하는 도구, 이해타산이 앞선 선택적 정의, 경제 성장을 앞세운 법·정책 환경이 맞물리면 인간 생명과 존엄을 지키려는 논의는 때로 공허하게 울린다. 

 

 

그러나 소화 데레사의 성찰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녀의 자의식은 늘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무엇을 기준으로 바라보는가 - 이 ‘시선’이 곧 윤리의 기준을 세운다. 시선은 가치 서열을 정하고, 정책 판단에도 영향을 준다. 분석과 평가는 수단일 뿐이며, 진리와 사랑에 맞춰질 때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다. 이때 분석은 도구가 되고, 평가는 방향을 잃지 않는다.

 

 

이 관점은 ‘국가’(혹은 집단)와 ‘우리 각자’ 모두에게 적용된다. 지난 7월 이재명 대통령은 세계정치학회 기조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말씀드리는 자유란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단지 간섭받지 않을 자유, 제약받지 않을 자유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곧 자유가 공동체적 책임과 함께할 때만 정당성을 가진다는 뜻이며, 생명 보호는 그 어떤 자유보다도 앞서는 공동체의 책임임을 상기시킨다.

 

 

그런데 최근 여당은 7월 한 달간 두 차례 모자보건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하며 무제한 낙태 허용과 건강보험 적용을 강력히 추진하고, 정부 역시 ‘미프진’ 등 낙태 약물 합법화를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인권을 위하는 조치라는 설명이 따르지만, 그 실현을 위해 태아의 생명을 수단화하는 순간, 우리의 시선은 다시 수단의 논리에 머문다.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인권 보호’가 인간다운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태아의 생명을 수단화하는 주장은 정당한가? 권리의 정당성은 생명 보호라는 공통 토대 위에서만 선다. 생명 보호가 무너지면 권리 담론은 스스로 근거를 잃는다. 생명은 수단이 아니라 기준이다. 우리의 시선이 생명 보호라는 보편적 진리를 향할 때, 자유는 책임과 만나 존엄을 지킨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우리의 결정이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자유가 근본적으로 진리에 달려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살펴보아야 합니다”라고 말한다.(「진리의 광채」 34항) 

 

 

인간은 내면성을 찾는 존재다.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데 인색하다. 나의 내면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묻는 일 - 이 물음이 곧 생명윤리가 직면해야 할 질문과 맞닿아 있다. 그 물음은 양심의 차원을 넘어, 우리가 만드는 제도와 정책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찰은 실천적 요구로서 우리를 생명윤리로 초대한다.


 

 

글 _ 최진일 마리아 교수(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연구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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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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