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리게네스( , 185년 경~253년 경)라고 합니다.1)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닌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제가 10살 경에 로마의 박해로 저의 아버지 레오니데스는 순교하였고, 저희 집안의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여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절망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여, 알렉산드리아에 학교를 설립하여 남은 식구들을 봉양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데메트리우스 주교님이 세례지원자들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셔서,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가르치는 교리교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그리스도교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철학뿐만 아니라 성경을 연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연구를 하는 동안 또한 제 삶에서, 하느님은 저에게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삶과 하느님과 영적인 합일에 도달하는 ‘영적여정’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깨닫도록 이끄셨습니다.
우선, 우리는 모두 하느님이 아니라 세상적인 것들로 가득한 이집트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또한, 이집트 땅을 뒤로 한 지점에 도착했더라도 홍해를 건너야만 “나는 야훼를 찬양하련다. 그지없이 높으신 분”(탈출 15장 참조)이라고 하면서 하느님을 찬양하는 이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라 이때부터 우리는 「아가」에 이르기까지 머나먼 영적인 길을 가야 합니다. 그 여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유혹받고 이를 물리치신 것과 같이, 우리도 광야를 지나 영적 여행을 계속하여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우물에 도착해야 합니다.(민수 21,17-20) 그런 연후 거룩한 땅의 문턱에 이르러서(요르단 강둑) 우리들은 모세가 불렀던 것처럼, ‘하늘아 귀를 기울여라. 내가 말하리라. 땅아 들어라. 내가 입을 열리라’ (신명 32장 참조)라고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후 우리들은 여호수아의 지휘 아래 싸우며 거룩한 땅(하느님 나라)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또 열왕기로 올라가면서 ‘다윗의 노래’에 다다라야 합니다. 즉 다윗이 원수들과 사울 왕의 손아귀에서 달아났을 때 ‘야훼는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구원하시는 이’ 하고 불렀던 노래입니다.(2사무 22,2-51 참조) 다음으로 우리들은 이사야에 다다라야 합니다. 그곳에서 이사야와 더불어 ‘임의 포도밭을 노래한 사랑의 노래를 내가 임에게 불러드리리라’ 하고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이사 5장 참조) 이 모든 노래를 다 거치고 나면 우리는 더한층 높은 곳으로 향해야 합니다. 그곳에 이르러 비로소 우리의 신랑과 더불어 아름다운 영혼으로 노래 중의 노래인 「아가」를 부를 수 있어야 됩니다.(오리게네스, 아가강론 1. 참조)
이 이야기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하느님께로 향한 영적인 삶은 ‘이집트를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감’과 같은 것입니다. 탈출한다는 것은 ‘회개함’을, 홍해를 건너감은 ‘세례를 받음’을 의미합니다. 사실 영적인 삶은 진실로 회개하는 영혼에게 하느님의 은총으로 새롭게 태어나게(세례) 하면서 시작됩니다.
움터로 보내집니다. 즉 하느님은 우리를 사막으로 보내시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악과 세상의 다양한 유혹에 대항하는 영적인 투쟁을 하게 하시며, 결국에는 하느님이 마련해 주신 생명의 우물에서 영적인 물을 마실 수 있도록 이끄신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 어려운 과정을 거친 이들은 드디어 하느님 나라 앞에 서게 되는데,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헌신했던 다윗과 같이하느님을 사랑했던 이사야와 같이,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다가오는데, 이 모든 것은 위와 같은 영적인 삶에 필요한 동반자들인 것입니다.
셋째로,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생활은 기쁨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이집트 땅에서 벗어난 이들이 기쁨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듯이, 어려운 사막을 지나거나, 요르단 강둑에 서서나, 그리고 하느님과 우리가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이루어 나오는 「아가」의 노래와 같이, 영성 생활은 최종적으로 늘 우리를 하느님과의 친밀한 사랑을 나누게 하는 것이므로, 찬미와 기쁨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여러분의 시대에서는 저를 그리스도교 신비신학의 첫걸음을 시작한 교부로 평가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그리스도교 신비신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드리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신비신학은 최종적으로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 하느님을 사랑하고 우리 자신을 사랑하여 기쁘고 행복하게 살면서, 이 사랑의 기쁨 때문에 우리 이웃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