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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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과 성삼문 : 교황 다마수스와 히에로니무스

[월간 꿈 CUM] 교회의 길 _ 예수,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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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 성녀 카타리나 성당의 히에로니무스 경당.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 성당 바로 옆에 성녀 카타리나 성당이 있는데 이 성당에 히에로니무스 성인이 성경을 해석하고 번역한 공부방과 경당이 보존되어 있다. 출처: 월간 꿈CUM


우리나라에 세종대왕과 성삼문이 있다면, 그리스도교 역사에는 교황 다마수스(Damasus I, 366~384 재위, 다마소)와 고결한 선비 히에로니무스(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347?~420, 예로니모, 제롬)가 있다.

세종대왕이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 세종대왕은 탁월한 리더십으로 조선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발전을 이끌었다. 특히 그는 한글 창제, 과학 기술 발전, 법률 제도 정비, 교육 체계 구축 등을 통해 백성들의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켰다. 그런데 이 모든 업적은 혼자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었다. 세종대왕은 성삼문, 박연, 장영실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을 발굴, 그 능력과 역량을 십분 활용했다.

교황 다마수스의 재위 기간 역시 조선 초 세종대왕이 처했던 상황과 비슷했다. 정세는 불안했으며, 이단의 난립으로 교회 존립이 불안한 상황이었다. 이에 다마수스는 과감한 개혁을 단행, 초기 교회가 뿌리내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몇몇 역사학자들은 교황 다마수스의 업적에 의문을 갖기도 한다. 다마수스가 영적인 차원이 아닌 세속적인 차원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폴 존슨은 「기독교 역사」에서 그가 개종시킨 여성들은 대부분 사교계 여성이었으며, 특히 부유층을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적고 있다. 심지어 다마수스가 부유층 여성과 간통을 저지르고, 살인을 했다는 내용의 고발장이 지금까지 로마 공문서 기록에 남아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당시 시대상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은 오류로 보인다. 당시 교황 다마수스를 상대로 한 간통 및 살인 관련 고발은 교황과 대립하던 아리우스 이단 신봉자들에 의한 것이어서 그 신빙성이 의심된다. 또 그가 부유000000층 선교를 위해 주력한 것은 당시 우상숭배가 로마 원로원과 부유층에 만연하고 있었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다마수스의 선택은 영적인 차원에만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예수가 세상에 왔듯이 교회도 세상과 보조를 맞추고 세상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황은 이를 통해 연약한 교회 기반을 다지고 내실을 튼튼히 하고자 했다. 이 선택은 세종대왕이 고결한 궁궐 속에 갇혀 있지 않고 백성을 위해 아래로 내려간 것, 그리고 국방을 튼튼히 한 것을 연상시킨다. 교황 다마수스는 특히 교회 시스템이 그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378년 즈음 교황은 시노두스를 개최하고 서방교회 주교들이 로마 교구에 복종하도록 했다. 이 결정이 없었다면 로마 교회의 우위성은 확립되지 못했을 것이고, 각 지역 교회별로 뿔뿔이 흩어져 신앙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다마수스는 또 그리스어로 진행되던 미사를 라틴어 미사 의식으로 바꿨다. 이는 훗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라틴어 미사를 각 나라말로 집전할 수 있도록 한 것과 같은 혁신적인 조치였다. 획기적인 개혁은 요즘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1600년 전에도 이미 이러한 대담한 개혁 조치들이 있었다.

교황 다마수스의 또 다른 업적은 가톨릭 전례의 정착이다. 세종대왕은 조선 음률을 바로 세우라는 어명을 내렸고, 천재 음악가 박연은 그 명을 받들어 예악을 정립했다. 4세기 말 가톨릭교회는 주류 종교 지위에 걸맞은 전례를 정립해야 했다. 그 일을 해낸 것이 교황 다마수스다. 당시 미사는 사도들의 언행록과 구약성경 낭독, 강론, 평화의 인사, 축성된 빵과 포도주의 분배 등 큰 틀에서만 통일되어 있었다. 전례의 구체적인 용어나 체계가 통일되어 있지 않았고,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지역 교회마다 제각각이었다. 이에 교황 다마수스는 단순했던 미사 의식에 장엄한 요소들을 도입하여 좀 더 체계적인 틀을 갖추도록 했다. 교황 다마수스의 새로운 미사 전례에는 초보적이긴 했지만 찬양이 도입되었는데, 춤은 이교도 풍습이어서 배제됐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다마수스의 업적 중 대표적인 것은 히에로니무스를 시켜 성경 전체를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다. 세종대왕 하면 떠오르는 것이 한글 창제이듯, 교황 다마수스 하면 떠오르는 것은 성경 완역이다. 원래 신약성경은 희랍어로,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당시 희랍어와 히브리어를 아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다. 백성을 위해, 교회 전례 통일을 위해 새로운 공식 성경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물론 당시에도 라틴어 번역본 성경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의 경우 원문 히브리어를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 아닌, 히브리어를 희랍어로 번역한 70인역(Septuaginta)을 ‘재번역’한 것이어서 원문과 차이가 많이 났다.

이에 교황 다마수스는 히에로니무스에게 라틴어 성경 번역을 명했고, 이후 무려 15년이 걸려(연구자들에 따라 차이를 보이곤 있지만 서기 384년경 4복음서가 번역되었고, 386년경에 신약성경, 391~405년경에 구약성경이 번역되었다) 기적적으로 ‘불가타’(Vulgata)가 탄생한다. 불가타는 ‘대중적’이란 뜻이다. 불가타판 성경은 원문에 충실하고 번역이 정확할 뿐만 아니라, 당시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라틴어로 되어 있었다.

물론, 불가타 성경에도 오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모세의 뿔’이다. 구약성경 원문 히브리어 성경에는 모세의 얼굴이 ‘빛나는 얼굴’이 되어있는데, 히에로니무스는 이를 ‘뿔난 얼굴’로 오역했다. 유럽을 여행하
다 보면 미켈란젤로의 ‘모세상’ 등 모세 관련 성화와 조각에 뿔이 달려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는 모두 불가타의 오류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마수스의 명을 받들어 불가타를 탄생시킨 히에로니무스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히에로니무스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히브리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던 재원이었다. 그런데 그는 단순히 어학에만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어떤 수도자 보다 더 철저하게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부부 사이에서도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을 정도였다. 히에로니무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있어 옮겨본다.

“사막의 교부였던 히에로니무스의 회상에 따르면 젊은 시절 그는 넝마 자루를 걸치고 흑인처럼 새까맣게 탄 몸으로 사막에서 혈혈단신으로 수마와 싸웠다. 식단도 비참했다. 냉수와 빵 부스러기 몇 조각이 전부였다.”(「독신의 탄생」, 엘리자베스 애보트 Abbott Elizabeth, 이희재 옮김, 해냄, 2006)에서 이런 삶을 가능하게 한 것은 성경 말씀에 대한 철저한 신뢰였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계시 헌장」에 있는 이 말은 원래 히에로니무스가 한 말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이름에 걸맞은 삶(고대 그리스어 히에로뉘모스 ?ερ?νυμος는 거룩한 사람이라는 뜻이다)을 살았다.

그에게는 유명한 전설 하나가 전해온다. 성경 번역 작업에 여념이 없던 어느 날, 엄청난 덩치의 사자 한 마리가 절룩거리며 그에게 다가와 앞발을 내밀었다. 

히에로니무스가 자세히 보니 사자 발에 가시가 박혀 있었다. 사자가 불쌍했던 그는 가시를 빼주었다. 그러자 사자는 히에로니무스가 죽을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켰다고 한다.

베들레헴에 가면 히에로니무스가 성경을 번역했다고 알려진 장소에 경당이 마련되어 있다. 그는 베들레헴 예수님 탄생지 인근의 동굴에 머물며 성경을 번역했고, 소임을 다한 뒤인 서기 420년 9월 30일 선종해 주님 탄생 성당에 묻혔다. 히에로니무스는 번역가들의 수호성인이며, 그가 선종한 9월 30일은 세계 번역의 날이다.

교황 다마수스의 탁월한 선견지명과 리더십, 히에로니무스의 헌신은 성령의 섭리였다. 세종대왕과 성삼문 없는 조선을 생각할 수 있는가. 교황 다마수스와 히에로니무스 없는 교회 역사는 생각하기 힘들다. 그들을 움직인 힘은 믿음,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이었다. 교황 다마수스는 자신의 묘비에 새겨질 문구를 직접 작성했다고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바다 위를 걸으시고, 풍랑을 진정시킬 수 있는 분,
죽어가는 모든 씨앗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분,
죽음의 끔찍한 쇠사슬을 푸실 수 있는 분,
3일 암흑 이후에 마르타의 오라버니를 이 세상에 다시 불러오실 수 있는 분,나 다마수스를 먼지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실 분,
나는 그분을 믿는다.” 

글·사진 _ 우광호 (라파엘,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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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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