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1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시선의 확장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지난 성모 승천 대축일에 유경촌 디모테오 주교가 우리 곁을 떠났다. 애통한 소식에 마음이 아렸다. 오래전 잠실성당에서 신학생과 주일학교 교사로 처음 만나 갑장 친구로 오랜 인연을 이어 왔다. 주교가 된 이후엔 자주 보지 못하다가 우리 세곡동본당의 빚을 탕감해 주러 왔을 때 반갑게 해후했고,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을 때 고마웠다. 투병 중이던 올해 초에 우리 가족 이름을 쓴 묵주 여섯 개를 손 글씨 편지와 함께 보내왔을 땐 고맙고 또 미안했다.


황망히 그를 떠나보낸 뒤, 8월 내내 시간 날 때마다 유튜브에서 그의 강론과 강연을 찾아 들었다. 명동밥집에서 노숙인과 함께 밥을 나누던 모습,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던 자리, 그리고 환경과 생태를 주제로 한 거리미사와 강론까지 그의 삶은 일관된 기도였고 적극적인 실천이었다.


그의 깊은 생각이 담긴 두 권의 책을 찾아 읽으며 무엇을 꿈꾸고 이루고자 했는지 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첫 책 「21세기 신앙인에게」는 이전에 쓴 네 편의 논문을 쉽게 풀어 펴낸 책으로, 2014년 고인이 주교 서품 때 출간됐다. 신앙의 시선을 나에서 이웃으로, 사회로, 더 나아가 환경과 지구까지 확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십계명의 2계명과 7계명을 오늘의 현실에 비춰 새롭게 해석하며, 책임 없는 신앙 고백과 불의한 재물 사용이야말로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고 도둑질하는 일이라고 일깨웠다. 주교가 되면서 이 책을 낸 것은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살겠다는 자기 선언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 책 「우리는 주님의 생태 사도입니다」는 주교로서 8년의 삶을 살아낸 뒤 2022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 7주년에 맞추어 출간되었다. 주교로서 했던 강론과 강연을 모은 1장은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였고, 2~4장은 이전에 쓴 논문들을 「찬미받으소서」회칙과 연결해 새로 다듬은 글들이었다.


두 책 모두 보편교회가 시대의 변화에 맞게 새롭게 인식하고 지향해야 할 내용을 담은 회칙들을 소개하고 있다.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라는 ‘정의’의 메시지로 가톨릭 사회교리의 토대가 된 레오 13세 교황 회칙 「새로운 사태(1891)」, 전쟁과 빈부격차로 고통을 겪는 이웃들을 돌보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민족들의 발전(1967)」,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의 피조물과 공동의 집인 지구를 지키고 돌보라는 ‘창조질서의 보호’ 메시지가 담긴 프란치스코 교황의 「찬미받으소서(2015)」에 이르기까지 ‘정의 - 평화 - 창조질서’로 이어지는 가톨릭 사회교리의 맥을 짚어주었다.


두 책을 읽고 나니 좀 더 명료해졌다. 유경촌 주교가 이 세상에서 이루고자 했던 하느님의 소명은 바로 ‘시선의 확장’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 신앙에만 머물지 말고, 이웃과 사회를 향해 시선을 넓히는 것.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하느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온갖 피조물과 환경까지 내 형제자매처럼, 내 몸처럼 바라보고 돌보자는 것이 아니었을까. 


공동의 집 지구에 불이 났음을 알아차리고, 불을 지른 게 바로 우리 인간이었음을 깨닫고, 깊은 뉘우침으로 생태적 회개를 한 뒤, 이제부터는 ‘생태사도’로 거듭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길 간절히 바랐던 것 같다.


그를 떠나보낸 슬픔은 크지만 애도에만 머물 수 없다. 사제로서 주교로서 혼신을 다해 이루려 했던 그의 꿈을 알았으니, 이제 남은 우리가 그 꿈을 이어받아 이웃과 사회, 자연과 지구를 향해 시선을 확장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 그러면 그는 우리 곁에서 우리와 함께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다.



글 _ 정석 예로니모(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5-09-10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9. 11

1코린 1장 30절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