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축성생활의 해 학술 심포지엄에 참석한 이들이 가톨릭대 성의교정 마리아홀을 가득 메웠다. 앞줄 왼쪽부터 사회자 박성호 신부, 발표자 김미정 수녀, 신소희 수녀, 서울대교구 총대리 구요비 주교, 발표자 박주영 수녀, 안준상 교수.
‘2025 축성생활의 해’를 맞아 축성생활의 의미와 사명을 되새기고, 축성생활의 변천을 교회 역사 안에서 살피며 축성생활자들이 시대의 변화에 응답하며 ‘평화의 길을 함께 걷는 희망의 순례자들’로 거듭나기 위한 논의의 장이 펼쳐졌다.
한국천주교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와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는 8일 서울 서초구 가톨릭대 성의교정 마리아홀에서 축성생활의 해 기념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발제를 맡은 안준상(유스도, 광주가톨릭대) 교수·박주영(체칠리아,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수녀·신소희(까리따스, 성심수녀회) 수녀·김미정(아녜스, 사도 성안드레아수녀회) 수녀는 축성생활을 다각도로 조명하며 시대 요청에 따른 축성생활의 자리 매김과 미래를 고찰했다. 총논평은 백남일(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신부가 맡았다.
서울대교구 총대리 구요비 주교는 개회사에서 “축성생활자들은 사랑이 메말라가는 세상에 따뜻한 사랑의 생기와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다”면서 “이 심포지엄이 축성생활의 새 지평을 여는데 작은 기여를 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축성생활, 삶의 기쁨 제시해야
안준상 교수는 ‘고립과 연대-현시대의 철학적 인간학을 위한 시론’ 발표에서 현대인이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주요한 징표로 불안과 우울을 제시했다. 과도한 성과주의, 개인의 고립과 은둔, 인간의 상품화와 등급화, 선택·도태의 정당화 등을 불안과 우울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하며, 소통과 연대로 새로운 인간 관계를 탐구했던 철학자들의 주장을 소개했다. 안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자기를 비우고 하느님으로 채우며,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축성생활의 의미와 연결해 “축성생활은 불신과 불안을 넘어서서 삶의 진정한 안정과 기쁨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며 그것이 또 실제로 가능함을 보여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충실성·쇄신, 축성생활 핵심 열쇠
박주영 수녀는 충실성과 쇄신을 축성생활의 본질과 미래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로 바라보며 교회 역사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도권 문헌에 담긴 축성생활의 신학적 흐름을 통합적으로 고찰했다. 박 수녀는 “축성생활은 교회 안에서 하느님 사랑에 고유한 방식으로 응답해온 역사이며, 그 역사는 곧 교회의 자기 이해와 깊이 연결돼있다”며 “축성생활을 조명하는 일은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을 재해석하는 여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교회는 본질적으로 삼위일체적 친교 안에 존재하며, 그 생명은 성직자·축성생활자·평신도라는 세 신원이 함께 걸어가는 교회를 이뤄갈 때 충만히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서로 존중하고 섬기는 공동체로
신소희 수녀는 축성생활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교회사와 영성신학적 관점에서 살피며 시대의 필요에 따라 나타난 다양한 축성생활의 형태를 분석했다. 또 수도자 고령화, 성소자 급감과 같은 위기 지표를 언급하며 “수도자 양성, 사도직 활동방법과 분야, 공동체 생활의 변화는 필연적이며 평신도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신 수녀는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인 유럽·북미 지역의 사례를 통해 “신생 공동체들은 ‘형태’는 새롭지만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봉헌과 공동체적 삶, 사도직 수행이라는 전통적 요소들을 창의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했다. 신 수녀는 성직자와 수도자에겐 묵상 기도를 통해 예수님 생활을 더욱 깊이 관조하기를 제안하고, 평신도에겐 하느님과의 관계 성숙을 위해 신학 공부를 권하며 “교회 모든 구성원이 서로 존중하고 섬기는 공동체로 변모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취약성, 가난 수락해야
김미정 수녀는 ‘희망의 순례 공동체인 교회의 영성과 사명’ 발표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 과정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은 신앙인들을 파스카 신비로 인도한다”면서 특별히 파스카 신비를 받아들이면서 마주하게 되는 ‘취약성’의 체험에 주목했다. 김 수녀는 “취약성은 결핍이나 결함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본질적 조건이자 인간이 관계적 존재로 살아가게 하는 원천으로 이해된다”면서 윤리신학자 키넌의 말을 빌려 “예수님 생애 자체가 취약성의 육화였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취약함, 가난함을 수락하면 내면의 틈이 열리고 하느님께서는 완벽함에 이르지 못한 죄책감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다”면서 “우리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순례자로서 끝까지 살 수 있도록 서로를 필요로 하는, 취약한 그러나 충만한 존재로 살도록 불림을 받았다”고 말했다.
학술 심포지엄은 15일 대구대교구(범어대성당), 22일 부산교구(남천성당), 29일 광주대교구(염주동성당)에서 같은 프로그램으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