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가정과 생명위원회 위원장 문창우 주교와 사제단이 12일 일명 ‘낙태 무제한 허용 법안’들과 관련해 법안을 대표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이수진 의원을 만났다. 이들이 발의한 모자보건법 개정안들에 대한 교회의 우려를 전하기 위해서다.
발의된 모자보건법 개정안들은 수술과 약물에 의한 낙태를 제한 없이 허용하고,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문 주교는 이날 오전 11시 30분 국회의원회관에서 두 의원을 만나 교회 입장을 설명했다. 모자보건법 개정안 입법 추진에 반대하는 주교단 성명서도 전달했다.
이 자리에는 가정과 생명위 총무 진효준 신부를 비롯해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장 정재우 신부,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오석준 신부, 교구 가톨릭생명윤리자문위원회 자문위원 방선영(올리바) 변호사 등이 배석했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문 주교와 사제들은 지난 8월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박주민 의원을 만난 지 약 2주만에 다시 국회를 방문한 것이다.
한 시간 동안 비공개로 진행된 면담은 남 의원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모자보건법 개정안들과 관련해 거세지는 한국 교회의 반대 목소리를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이 자리에서 남 의원은 문 주교와 사제단에게 “6년 동안 낙태죄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입법 공백의 사각지대 속에 여성의 건강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사안의 심각성과 시급성을 고려해 우선 모자보건법 개정안들을 발의하고 이후 수정·보완하는 방향으로 법안을 발의했을 뿐 만삭에도 낙태할 수 있도록 전면 허용을 고려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문 주교는 의원들과 면담 후 기자들과 만나 “생명권과 이를 보호하는 것은 교회가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보루임을 강경하게 이야기했다”며 “낙태는 결코 여성의 권리를 신장하지 못하고, 발의 배경이 어떠하든 모자보건법 개정안들이 사회에 미칠 영향과 그 위험성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낙태를 전면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법안이 발의된 것 자체가 태아가 인간 생명임을 부정하는 위험한 메시지를 사회에 확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 주교는 “교회는 생명 존중과 더불어 여성이 위기임신 상황에서도 충분한 이해와 배려를 바탕으로 생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참된 의미의 ‘자기결정권’이 실현되기를 요청하고 있다”며 “입법자들이 일부의 입장만 대변하는 것이 아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많은 이의 목소리도 반영해 입법을 해주기를 바란다”고 거듭 당부했다.
정재우 신부는 “그동안 교회가 ‘낙태를 반대한다’는 입장 아래 낙태죄 후속 입법 과정에서 주수 등 세부사항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그 결과 낙태를 주수와 사유에 관계없이 전면 허용하는 법안까지 발의됐다”며 “앞으로 교회는 ‘의료인의 시술 거부권’을 비롯해 아기가 태어났을 때에만 인정되는 생부의 책임을 임신 시기로 확대하는 등 후속 입법 방향성에 적극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률가로서 함께한 방 변호사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태아의 생명권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임신한 여성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든 떳떳하게 생명을 지키고 아이를 키울 수 있어야 실현된다”며 “낙태의 자유화를 논하기 전에 여성이 낙태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환경과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입법을 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물을 죽이는 경우에도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는데, 인간 생명인 태아를 자유롭게 낙태할 수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낙태 전면 허용은 임신 시기별로 낙태의 허용 여부를 달리한 2019년 낙태죄 처벌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문 주교와 사제단은 면담을 마치고 가정과 생명윤리위 정기회의에 참여해 우리 사회에 만면한 생명경시 풍조에 대한 교회 대응을 모색했다. 한국 교회는 태아의 생명을 인간 생명으로 여기지 않은 개악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도록 적극 대응해나갈 예정이다.
한편 김정재(가브리엘) 서울대교구 지구 사목협의회 총대표회장은 11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남 의원 지역사무실을 찾아 의원 지역구에 위치한 7개 본당 신자들이 서명한 모자보건법 개정안 반대 서명부를 전달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