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력 절벽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한국군 상비병력은 이미 50만 명 선을 밑돌고 있습니다. 국회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병력은 47만여 명 수준에 불과합니다. 불과 6년 사이 10만 명 이상이 줄어들며, 무려 10개 사단 병력이 사라졌습니다. 앞으로가 더 심각합니다. 지난해 20세 남성 인구는 25만 명이었지만, 2040년엔 14만 명 수준으로 줄어들 전망입니다. 2045년이 되면 입대 가능 인구가 12만 명에 불과할 것이란 분석도 있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정치권이 꺼내든 카드 중 하나가 여성 모병제와 징병제 논의입니다. 지금까지 여성은 장교와 부사관으로만 입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여성도 병사로 지원하여 군 복무하는 모병제나 성별 구분 없이 일정 연령대가 되면 의무적으로 사병으로 복무하는 징병제의 길을 열자는 구상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최근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여성도 현역병으로 복무할 수 있도록 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여성 징병제 논의에 불을 붙였습니다.
문제는 여성 징병제 논의가 언제나 젠더 갈등의 연장선에서만 소비되어 왔다는 점입니다. 병력 절벽이라는 구조적 위기를 다루기보다는, 남성은 군 복무를 한다는 불만, 여성은 출산의 의무를 회피한다는 힐난이 서로 충돌하는 구도로 논쟁이 되었습니다. 결국 성별 간 불평등을 따지는 소모적인 논쟁으로 흐르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습니다. 군대 문제는 성 대결의 장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양성평등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사회적 논의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북유럽 국가들의 경험이 우리에게 예시가 될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는 2013년 유럽 최초로 여성 징병제를 도입했습니다. 사회적 논란이 컸지만, 양성평등의 가치를 강조하는 여론이 힘을 보탰고 결국 남녀 모두 병역 의무를 지게 되었습니다. 스웨덴은 2010년 징병제를 폐지했다가 러시아로 인한 긴장이 고조되자 2017년 징병제를 부활시키며 여성에게도 의무를 부과했습니다. 덴마크는 애초 2027년에 시행하려 했던 여성 징병제를 앞당겨 올해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이들 국가는 양성평등이라는 가치 안에서, 저출산과 안보 위기라는 현실적 배경 때문에 여성 징병제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한국의 상황은 이들과 유사하면서도 다릅니다. 먼저 군에는 남성 중심의 성차별 문화가 여전합니다. 여군 비율이 전체 병력의 4에 불과한 상황에서 군 성폭력 문제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여군을 위한 화장실조차 없는 전방 초소가 많은 등 여성을 위한 시설이 태부족입니다, 그래서 군대 내에서 여성을 위한 환경과 문화가 조성되지 않는다면 여성 모병제 확대는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출산으로 인한 병력 절벽은 진행형입니다. 여성 징병제와 관련 여러 기관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각 대학 ROTC(학군장교 후보생)에는 여대생의 지원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여성 예비역 중 희망자만 받았던 동원 훈련도 의무화되었습니다. 결국 갈등을 부추기는 논쟁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인식과 성숙한 토론을 거친 사회적 합의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오늘 사제의 눈 제목은 < 여성 징병제 논의 시작하자 >입니다. 여성 징병제·모병제 논의가 우리 공동체가 더 성숙한 양성평등으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