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000명의 성소수자 가톨릭신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9월 5일부터 7일까지 열린 로마 순례가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삼종기도에 참가하는 행렬로 절정을 이뤘다. 공식적인 희년 행사 일정은 아니었지만, 순례단은 일부 교회 관계자들의 환영을 받았다.
미국과 서유럽의 교황청 관측통과 관찰자, 평론가, 활동가들 사이에서 이번 순례는 레오 14세 교황에 대한 일종의 시금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로마에 모인 성소수자 순례자들의 존재는 교황이 신중한 껍질에서 벗어나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적이고 포용적인 비전을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보다 전통적이고 제한적인 방향으로 기울 것인지 분명하게 밝히도록 강요할 것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소수자 의제를 언급할 때마다 불가피하게 촉발되는 이념적 긴장 속에서, 양측 모두는 조심스럽고 신중하며 절제된 교황의 ‘가면’ 뒤에서 진짜 교황이 드러나기를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분명한 답은 이럴 것이다. 결국 그 조심스럽고 신중하며 절제된 가면이 바로 진짜 교황일지도 모른다는 것.
이런 맥락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불꽃 같은 개혁가이든, 혹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가장 맹렬한 비판자들처럼 전통주의를 되살리는 인물이든, 다른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리는 일은 결국 좌절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순례와 맞물려, 미국 예수회의 제임스 마틴 신부는 레오 14세 교황과 만났고, 그 자리에서 교황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포용적 접근을 이어가고 싶다고 약속했다며 성소수자 공동체에 안도감을 전했다.
그 발언을 의심할 이유는 전혀 없지만, 동시에 주목할 점은 레오 14세 교황이 그 메시지를 공식 석상이 아닌 비공개 자리에서, 직접이 아니라 마틴 신부라는 신뢰받는 대리인을 통해 전하는 데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종의 영리한 방식이다. 즉 자신이 직접 발언해 각종 이념적 논쟁 속에서 왜곡·과장되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신뢰받는 인물을 통해 공동체에 메시지를 전하도록 택하는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볼 때, 이번 성소수자 순례가 낳을 수 있는 ‘큰 반전’은 아마도 그 정도일 것이다.
교황이 직접 깜짝 등장해 미사를 집전한다든가, 2023년 논란이 되었던 문헌 「간청하는 믿음」(Fiducia Supplicans)에서 언급된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하는 것 같은 극적인 제스처를 기대하는 이들은 거의 확실히 실망하게 될 것이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레오 14세 교황은 대부분의 사안에서 전형적인 중도파로 보인다. 성소수자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교회 안에 들어오기를 원하는 이들을 환영하겠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조를 부인할 계획은 없어 보이지만, 동시에 결혼과 성, 가정에 관한 교리의 기준을 바꾸려는 움직임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레오 14세 교황의 차이는 아마도 본질적인 부분보다는 표현 방식에 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개적으로 이를 반복해서 강조한 반면, 레오 14세 교황은 굳이 요란한 발언을 하지 않고 행동에서 그 입장을 유추하도록 내버려두는 데 만족하는 듯하다.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레오 14세 교황 교황직의 더 큰 맥락이 있다.
9월 8일은 로버트 프란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레오 14세 교황으로 선출된 지 정확히 4개월째 되는 날이었다. 그동안 교회가 다뤄야 했던 충격적인 선언이나, 논란을 일으킨 인사 조치, 교리적 분쟁, 고통스러운 해임이나 강등, 양면적이고 분열적인 발언이 몇 건이나 있었는가? 정답은 ‘하나도 없다’이다.
일부에서는 이것을 ‘태풍 전의 고요’로 본다. 즉, 레오 14세 교황이 신중히 사람을 파악하고, 자원을 축적하며, 때가 되면 크게 판을 흔들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 초기 4개월은 단순한 ‘쉼표’나 ‘절정 전의 침묵’이 아니라, 이미 이 교황직의 실질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즉, 균형을 중시하고, 다양한 견해를 존중하며, 특별히 필요한 이유가 없으면 함부로 변화를 시도하지 않고, 지금 교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또 다른 격변이 아니라 평화라는 신념이 드러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어쩌면 우리는 ‘진짜 교황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이미 보고 있는 모습이 곧 우리가 얻게 될 전부일 수 있다. 즉, 충돌보다 공동체를 훨씬 더 중요한 이상으로 여기는, 온화하고 사목적인 목자 말이다.
글 _ 존 알렌 주니어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