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 입국 전 머물렀던 중국 교회 서만자(西灣子)교구가 최근 폐쇄됐다. 이로써 내몽골 지역에서 오랜 신앙 역사를 지닌 서만자교구가 역사 속에 묻히게 됐다.
교계 외신들에 따르면, 교황청이 10일 성명을 통해 “레오 14세 교황이 지난 7월 8일 1946년 비오 12세 교황이 승격한 중국 서만자교구와 선화(宣化)교구를 폐쇄하고, 장가구(張家口)교구를 설정하는 데 대해 승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교황청은 “주님의 양 떼에 대한 사목적 보살핌을 증진하고 그들의 영적 선익을 보다 효과적으로 돌보고자 하는 열망에 따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롭게 설정된 장가구교구는 북경관구에 속한다. 교구 주교좌성당은 장가구 대성당이 된다. 교황은 새 교구장에 왕정귀 주교 임명자를 임명했다. 왕 주교는 1962년 출생으로 1990년 성화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서만자교구의 마 야넨 주교는 장가구교구 보좌 주교로 임명됐다.
장가구교구 인구는 약 400만 명이며, 8만 5000명이 가톨릭 신자와 사제 89명이 있다. 이번 교황청 승인으로 중국 당국이 설정한 장가구시 행정구역과 장가구교구 관할구역이 일치하게 됐다. 교구는 장가구시를 중심으로 14개 구와 현을 관할한다. 선화교구는 장가구교구에 편입됐고, 기존에 속했던 연경구는 북경대교구에 편입됐다. 시린궈러멍시는 지닝교구에 속한다.
서만자교구는 브뤼기에르 주교와 모방 신부 등이 머물던 곳으로, 오랜 교우촌이다. 1700년대 이미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곳으로, 이후 조선 입국을 열망했던 브뤼기에르 주교가 1834~1835년 1년 동안 이곳 서만자에서 지내며 교우들의 도움을 받으며 조선 입국을 준비했다. 이후 브뤼기에르 주교는 서만자교구에서 마가자 지역으로 이동해 조선 입국을 바랐지만, 마가자에서 선종했다. 이후 그를 대신해 모방 신부가 서만자 지역에 있다가 조선에 입국해 조선 출신 신학생을 선발하는 등 조선 사목에 큰 영향을 끼쳤다. 또 김대건·최양업 신부와 최방제 등이 신학생이던 당시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로 이동하기 위해 이곳을 거치기도 했다.
교황의 재임 기간 중 중국 내 교구 설정을 한 것은 처음이다. 2018년 바티칸과 중국이 주교 임명에 관해 체결한 임시 협정 이후 변경 사항이 발표된 첫 사례다. 이 협정은 지난해 10월 4년간 한시적으로 연장된 바 있다. 중국 정부 산하 애국협회는 104개 교구를 두지만, 교황청은 143개를 승인한 바 있다.
아울러 폐지된 선화교구장 주교에 관한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선화교구의 추이 타이 주교는 중국 지하교회를 담당했고, 중국 공산당 산하 가톨릭 애국협회 가입을 거부해왔다. 추이 주교는 이미 75세로 은퇴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30년 동안 반복적으로 구금과 가택 연금, 강제노역형에 처해진 바 있다. 허드슨 연구소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추이 주교는 2018년 바티칸-중국 협정 체결 이후 네 차례 구금됐으며 2021년 4월 체포된 이후 모습을 드러낸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