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_ 튀르키예, 그리스 성지 순례기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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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마리아의 집 출처: 월간 꿈CUM
‘사랑과 우정 사이.’
남녀간 사랑이라는 좁은 의미의 사랑은 분명 우정과 다르다. 하지만 종교적 사랑, 인류애, 환경 사랑 등 큰 틀에서의 사랑은 그 안에 우정을 품는다.
‘전설과 역사 사이.’
인간적 욕망을 표현한 좁은 의미의 전설은 분명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하지만 큰 틀에서의 신앙적 전설은 그 안에 신앙 역사를 품는다.
전설의 시작은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 ‘예수의 유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26-27)
성경에는 예수가 사랑한 제자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2000년 전부터 신앙인들은 그 제자가 사도 요한이라고 믿었다! 전설은 계속된다. 요한은 예수의 유언을 지킨다. 예루살렘에 있는 자신의 집에 마리아를 잠시 모신 뒤, 3000km 떨어진 에페소로 거처를 옮긴다. 스테파노 순교 사건 등 유대인들의 박해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예루살렘에서 마리아를 모시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전설은 에페소 야외극장에서 항구 쪽으로 약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집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요한이 마리아를 모셨다고 한다. 이 집에 살았던 예수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세대에 세대를 거쳐 이어졌고, 대략 10세대 후 자손들이 그 집터 위에 마리아를 기억하는 성당을 지었다. 서기 431년 에페소 공의회 때 교부들이 이 성당에 모여 회의를 했다. 100년 후, 유스티아누스 황제(527~565 재위)는 마리아를 기억하기에 기존 성당이 소박하다고 생각했는지, 대규모 증축 공사를 했다. 이쯤 되면 이 이야기가 전설인지 사실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사도 성 요한의 무덤 성 요한 출처: 월간 꿈CUM
전설은 계속된다. 에페소의 붐비는 시장통(현 에페소 성모 대성당 자리)에서 마리아를 모시던 요한이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결심한다. 그렇게 이사간 곳이 에페소 앞산이다. 지금도 에페소 앞산 남서쪽 능선에 마리아가 살던 집이 전설로 내려온다. 소아시아와 유럽의 신앙인들은 마리아가 이 집에서 노년까지 살다가 승천했다고 믿는다. 전설을 믿는다.
그렇다면 오늘 날 ‘마리아의 집’은 어떻게 발굴되었을까.
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4년 독일인 안나 카타리나 엠메리크 수녀(Emmerrick, 1774~1824, 아우구스티누스회)를 복자품에 올렸다. 이 수녀는 불의의 사고로 전신 마비가 된 후 12년 동안 침대에서 생활했는데,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자주 목격했다고 한다. 이 수녀가 직접 본 환시 ‘예수 수난 사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 2004)다. 그런데 이 수녀가 본 환시는 예수 수난뿐이 아니었다. 수녀는 환시 속에서 성모 마리아의 일생을 보았다! 태어날 때부터 승천할 때까지 모든 것을 생생히 보았다. 수녀는 자신이 본 모든 것을 당대 최고의 시인 브렌타노(Clemens Brentano, 1778~1842)에게 말했고, 시인은 수녀의 증언을 바탕으로 ‘동정 마리아의 생애’라는 책을 1852년 펴냈다.
성 요한 대성당 유적 출처: 월간 꿈CUM
이 책에 마리아의 집과 주변 풍경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엠메리크 수녀는 독일 밖으로 한 번도 나간 일이 없었다), 이를 주목한 사람이 있었다. 1878년 앙리 융이라는 프랑스인 신부가 이 책을 들고 에페소 일대를 샅샅이 뒤졌고, 1891년 엠메리크 수녀가 묘사한 곳과 똑같은 장소를 찾아냈다. 이후 1961년 교황 요한 23세가 ‘에페소 성모 마리아의 집’을 공식 성지로 선포했다. 이어 1967년에 바오로 6세 교황이, 1979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2006년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이곳을 찾아 기도했다.
성모 마리아의 집이 에페소 앞산에 있다면, 에페소 뒷산 쉬린제 마을에는 사도 성 요한의 무덤, 그리고 그 무덤 위에 지어진 성 요한 대성당(Basilica Of Saint John)이 있다. 신자들이 종교 자유를 얻은 직후 4세기에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던 자리에 작은 목조 성당을 세웠는데, 200여년 후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그 자리에 대성당을 건립했다. 이 대성당이 성 요한 대성당이다. 발굴을 통해 드러난 성 요한 대성당은 1500년 전 건물이라고는 그 규모가 믿기 힘들 정도다.
길이만 110m에 2층 구조인데, 세례당, 지하 경당 등을 갖추고 있었다. 서기 557년 지진으로 일부가 부서지고 그 뒤 654년 이슬람 침공에 의해 파괴됐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요한 대성당을 지키기 위해 성벽을 쌓고 성으로 들어가는 3개의 문을 만들었는데 오늘날에는 ‘추적의 문’(Pursuit Gate, 박해의 문)만 남아있다. 이후 1300년대에 찾아온 대규모 지진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성당과 성벽이 무너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후 이 지역이 이슬람 세력 하에 들어가면서 재건은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요한 대성당은 제대가 있었던 부분의 무덤과 기둥 일부, 대성당 터 일부만 남아있다.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을 성지로 선포했다.
오늘도 전 세계 수많은 신앙인이 에페소를 찾는다.
그들은 전설로 내려오는 성모 마리아의 집, 성모 마리아 대성당 유적, 성 요한의 무덤, 성 요한 대성당 유적을 찾아 무릎 꿇고 기도한다. 기도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행위다. 그 현실의 행위가 쌓이면 역사가 된다. 이렇게 전설은 역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