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가 고운 초로의 남자가 있습니다. 일어나 아침을 맞을 때,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마주할 때 그의 얼굴은 천사 같습니다.
관객은 런닝타임 두 시간 내내 이 아름다운 주인공을 만나지만, 그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고 느낍니다. 이름이 ‘히라야마’이고, 도쿄의 여러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이 직업이며, 올드팝을 들으면서 출퇴근하고, 일이 끝나면 목욕탕에 들렀다 선술집에서 소주 한잔을 마신 뒤 책을 읽으며 잠이 드는 사람. 영화는 똑같이 반복되는 그의 하루를 계속 보여주지만 관객은 성에 차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의 절박한 사연과 갈등의 몸부림을 목격하고서야 스크린 앞에서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나, ‘퍼펙트 데이즈’는 다른 길을 제시합니다. 히라야마의 일상 안에 담긴 소중한 의미들을 관객과 함께 찾아가는 것이지요.
히라야마는 밤마다 불길한 꿈을 꾸지만, 내용이 뭔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늘그막에 독신으로 지내며 남들이 무시하는 노동을 하는 이유도, 빈틈없이 자신을 닦달하며 사는 까닭도, 언뜻 보이는 눈물의 의미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조카와의 만남을 통해 “그에게 말 못 할 깊은 상처가 있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지요.
덕분에 관객은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는 대신에 히라야마의 되풀이되는 하루하루를 지켜보며 그 안에서 의미심장한 장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거리의 잡초를 소중히 가져와 키우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화장실 벽 틈새로 쪽지를 주고받으며 격려하고, 시한부 환자와 그림자 밟기 놀이를 하면서 잠시나마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그 가운데 가장 멋진 것은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모습입니다. 매번 바뀌는 바람과 햇빛 속에서 다시 못 올 영롱한 찰나를 담아낼 때 히라야마의 미소는 눈부십니다.
“지금은 지금, 다음은 다음에!”
과거는 말없이 품어 안고, 미래에 대한 걱정은 나중에 하고, 오늘은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내야 한다고 그는 다짐합니다. 그런 히라야마에게 아침마다 마주하는 새날이 ‘완벽한 날들’(퍼펙트 데이즈)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오래도록 하늘을 올려다봐도 눈이 시리지 않는 가을의 초입입니다. 이 순정한 시간을 건너가는 독자 여러분의 매일매일이 하나같이 빛나는 ‘퍼펙트 데이즈’이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