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30일
교구/주교회의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칼을 벼리며

[월간 꿈 CUM] 꿈CUM 달인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우연인지, 필연인지 19세 나이 때의 일본 방문 경험이 지금껏 일식 조리사로 살아오는 계기가 됐다.

호텔조리사로 일했고, 사람들에게 회자되곤 했던, 조금은 유명세를 떨쳤던 일식집을 운영했었다. 이제는 일식조리업을 그만할 때도 된 것 같은데 그만두지 못하고 수원에서 나만의 작은 초밥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 모든 것 뒤에는 주님이 계셨다. 지난 세월 늘 함께해 주신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새벽에 수산시장, 농산물시장에 나가 신선한 재료들을 구입하고, 상인들과 정다운 덕담과 함께 마시는 달달한 믹스 커피 한잔의 맛은 내 영혼이 내게서 달아날 때까지 못 잊는 맛이다. 

이후 가게에 와서 평생 입었던 조리복으로 갈아입고 앞치마를 허리에 힘껏 동여맬 때는 기분이 새로워진다. 아마도 내 몸에는 온통 조리사의 피가 흐르나 보다.

적지 않은 세월 동안 갈아온 숯돌을 꺼내 놓고 칼을 가는 것도 이제는 습관이 되어 무감각할 법도 한데, 아직도 칼을 숯돌에 올리는 것은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진다. 칼을 벼리는 시간은 나에게는 참 평안한 시간이다. 이 예리한 칼날로 생선과 야채들을 손질하여 손님들에게 음식을 제공할 상상을 하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다.

야나기(사시미) 칼, 우스바(야채) 칼, 대바(생선 뼈 바르는) 칼, 이 세 자루의 칼만 있으면 내가 살아가는 인생에 빽이 없어도 항상 든든했다.

그런데 칼처럼 다가온 내 인생의 빽이 40여 년 전 또 하나 생겼다. 첫영성체를 한 그날, 내 인생에 가장 든든한 빽! 주님과 성모님의 빽이 생겼다. 지금까지 가게를 오픈할 때마다 눈에 잘 띄는 곳에 주님과 성모님 성상을 모셨다. 요즈음처럼 고물가, 불안정한 경기, 고인건비에 시달리다 보니 때로는 주님을 향한 마음이 소홀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의 어려움도 주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앞으로 다가올 모든 시간 또한 주님의 뜻일 것이다. 나는 그 뜻을 받아들이고 순종할 뿐이다.

오늘도 새벽시장을 다녀와서 가게 문을 활짝 열고 주님의 든든한 빽으로 무장한다. 그리고 숯돌을 꺼내 칼을 벼린다. 부족한 내 마음에 예수님이 완전히 자리할 때까지 나는 그렇게 매일 마음의 칼을 벼린다.  


글 _ 임병진 (야고보, 일식셰프)
서울 청량리에서 태어나 경동고를 졸업하고 20살부터 일본에 건너가 조리(일식)를 하였으며 국내에 들어와 유명 호텔조리부에서 일식(초밥) 책임자로 일했다. 이후 서울 강남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다 몇 년 전부터 본인 이름을 건 ‘임병진 단스시’를 김포 등지에 열었으며, 현재는 수원시 송죽동에서 같은 이름으로 작은 초밥집을 운영하고 있다. 가끔 시간이 나면 조리컨설팅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09-2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9. 30

시편 105장 3절
거룩하신 이름을 자랑하여라. 주님을 찾는 이들의 마음은 기뻐하여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