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4일
교구/주교회의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소설 새남터

[월간 꿈CUM] 꿈CUM 신앙칼럼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1846년 9월 16일, 한강 변 모래사장 새남터.

햇빛이 어느덧 한강 변 모래사장으로 걸어 내려와 있었다. 그 모래 위에서 포근한 공기가 잘게 몸을 떨었다. 그것은 곧 다가올 두려움에 대한 경고였다.

멀리서 군관과 망나니가 걸어오고 있었다. 앞서서 걷고 있는 군관의 군복은 푸른 모시옷인데, 오래된 옷을 새로 빨아 입어서인지 너무 헐렁하고 버석거리는 것이 지나치게 검소함을 드러내려는 듯했다.

망나니는 오른쪽 어깨에 큰 칼을 걸치고 있었다. 왼손은 중곤(重棍)을 들었다. 대역 죄인의 볼기를 치던 가장 큰 곤장. 큰 곤장보다 더 큰 곤장이다. 그 길이가 다섯자 여덟치(약 174cm), 넓이가 다섯치(약 15cm), 두께가 여덟푼(약 2.4cm)이다. 사형집행에 필요 없는 도구였지만, 망나니는 늘 중곤을 부적처럼 들고 다녔다. 칼의 날카로운 죄의식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길 바라는 듯.

그 앞에서 오십여 명의 군졸이 ‘물렀거라!’를 번갈아 가며 외치고 있었다. 군졸들 옆으로 사람들이 밀치고 밀리면서 새로운 구경거리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대부분 여인이었다. 늙거나 젊거나 모두 입고 꾸몄다. 머리에 꽃을 꽂고 볼에는 약간 붉은 분칠을 했다. 입에 담뱃대를 물고 손에는 옷 깁는 바늘과 실을 들었는데, 서로 어깨를 비비며 빽빽이 들어서서 모래사장 위 무릎 꿇은 사람을 곁눈질하며 수군거렸다.

결박된 채 무릎 꿇은 김대건의 장딴지가 두려움의 무게감으로 떨렸다. 자유의지로 내린 결정의 무게가 물리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근육들이 피곤하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는 지난밤 잠을 놓쳤다. 벼룩의 등쌀에 시달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 극한의 피곤함 속에서 김대건은 두려움이 발산하는 시큼한 냄새에 몸을 떨었다. 동시에 선뜩함이 몸을 훑고 지나갔다. 김대건은 몸을 건드린 그 한기가 마음까지 치지 않기를 기도했다. 김대건은 자기보호 본능과 용기가 서로 싸우는 것을 느꼈다.

두려움으로부터 돌아서서 도망쳐야 한다. 절대 어깨너머로 뒤돌아보면 안 된다. 방향을 너무 자주 틀어서도 안 되고. 그랬다가는 어느새 원위치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죽음에 대한 지나친 분석도 멈춰야 한다. 지나친 분석은 진실을 손상시킬 수 있으니까.

김대건은 과거와 현재가 아닌 미래에 초점을 맞췄다.

그때였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두려움이 툭 떨어져 나갔다. 두려움이 물러선 계기와 과정에 대해서는 서술이 불가능하다. 성 바오로의 회심 사건처럼 인과관계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벼락을 맞듯이 갑작스럽게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김대건의 강한 의지 때문이 아니었다. 설명하기 힘든 강압적이고 압도적인 그 무엇, 저절로 주어지는 선물이었다. 두려움은 이제 그를 떠나 마치 주전자에서 물을 따르듯이 몸과 마음 밖을 향해 흘러나가고 있었다.

김대건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영원히 흘러가는 푸른 한강을 바라보았다. 한강은 피가 푸른색인 순교자였다. 한강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강은 자기가 갈 길을 알고 있었다. 너무나 쉽게 자기 고집대로 흘러 드넓은 바다로 자유롭게 가는 모습에 기뻤다. 김대건은 시선을 무릎 아래 소복이 쌓인 모래로 옮겼다. 모래 위 포근한 공기는 더 이상 떨지 않았다.

망나니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의 헐렁한 옷은 주인의 거친 발길질과 스윙과 회전을 미처 따라가지 못했다. 김대건이 망나니를 배려해 고개를 길게 앞으로 내밀었다. 동시에 머리카락 한 줌이 이마로 흘러내렸다. 
망나니의 옷자락이 열두 번 퍼덕거렸을 즈음이었다. 큰 칼이 김대건의 머리 위로 큰 반원형 곡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동시에 김대건의 머리가 떨지 않는 포근한 공기를 뚫고 모래 위로 떨어졌다.

삶과 새로운 삶의 경계에 걸쳐진 김대건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뇌세포가 민들레 홀씨로 만든 베개로 변해버린 것 같았다. 동시에 김대건은 깨달았다.그리고 머릿속에서 세상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잘 들어라! 너희가 두려워하는 것은 너희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아니다.” 새로운 삶의 경계에서 그는 깨달았다. 이제는 선명해졌다. 모든 것이 보였다. 이제는 안다! 이제는 영성가가 아니라 체험자다.

망나니의 칼은 고통의 칼이 아니었다. 궤멸의 칼이 아니었다. 영광의 칼, 생명의 칼이었다. 김대건이 또다시 외쳤다. “나는 죽지 않았다!”

새남터에 모인 사람들의 귀에는 이 외침이 들리지 않았다. 김대건은 새남터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외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 물리적인 시간 밖에 있었다. 김대건은 천년도 지나간 어제와 같다는 창조주의 시간에 올라타 있었다. 1846년 김대건의 외침은 1946년, 2846년, 11846년, 101846년, 1001846년에 사는 사람들의 귀에 동시에 들렸다.

김대건은 자신의 내면에 짧은 휴식을 허락했다. 눈을 한번 깜박이는 것보다 더 짧은 순간이었다. 그 찰나의 휴식은 영원한 안식이었다. 모래 위로 툭 떨어진 김대건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해독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비탄의 표정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그 표정이 외치고 있었다.

“나는 보았다! 나는 죽지 않았다!”
그는 눈먼 이들의 우주에 사는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글 _ 우광호 (라파엘, 발행인)
원주교구 출신.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994년부터 가톨릭 언론에 몸담아 가톨릭평화방송·가톨릭평화신문 기자와 가톨릭신문 취재부장, 월간 가톨릭 비타꼰 편집장 및 주간을 지냈다. 저서로 「유대인 이야기」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성당평전」, 엮은 책으로 「경청」 등이 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10-04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10. 4

집회 2장 4절
너에게 닥친 것은 무엇이나 받아들이고 처지가 바뀌어 비천해지더라도 참고 견뎌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