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어요.”
한국의 노동 현실을 다룬 ‘커버스토리’를 준비하며 귀에 맴돌도록 들은 말이다. 이 말을 반복해서 듣다 보니 문득 9월 24일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떠올랐다.
극 중 25년간 제지 전문가로 일해온 만수(이병헌)는 어느 날 갑작스레 해고당한다. 이후 재취업을 위해 벌이는 일들에 가족을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고 합리화하며 대사를 반복한다.
기업 관계자들도 비슷하게 말한다. “노동계에서 벌어지는 문제들도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기업이 이윤을 남겨야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되고, 그 돈으로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노동자들의 요구를 전부 수용하면 기업이 버틸 수 없는 노릇이라고 한다. 그러니 더 큰 이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했다. 물질이 중요시되는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사람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외치던 이들은 결국 코로나19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원들을 해고했다는 세종호텔 측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냈다. 아직 해고자 복직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대화를 시작한 것만으로도 희망이 생겼다고 전망했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고통은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보십시오, 그대들의 밭에서 곡식을 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야고 5,4)라는 말씀처럼 노동자들의 고통에 찬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