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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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케이아,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교회

[월간 꿈CUM]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_ 튀르키예, 그리스 성지 순례기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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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케이아 대성당 세례 터



라오디케이아(λαοδικεια)

‘에파프라스.’(επαφρας) 바오로 사도가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마지막 부분에서 비중 있게 언급한 인물이다. 보통 사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바오로 사도의 증언에 의하면 에파프라스는 콜로새 출신으로, 에페소에서 도보로 약 9~10일 정도 걸리는 거리(약 180km)에 있는 라오디케이아의 신앙 공동체를 위해 헌신했다.(콜로 4,12-13 참조) 에파프라스의 노력으로 라오디케이아 공동체는 점점 그 규모를 키워나갔다. 하지만 공동체 규모가 커지면서 문제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라오디케이아 신자들은 부자였지만 영적으로는 가난했다.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 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묵시 3,17)

이러한 문제를 타파하기 위함이었을까. 바오로 사도는 라오디케이아에 편지를 쓴다.(콜로 4,16 참조) ‘로마서’ ‘에페소서’ ‘코린토서’처럼 ‘라오디케이아서’도 있을 뻔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그 내용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바오로 사도가 라오디케이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는 어떤 내용이 있었을까. 예상컨대,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과 관련한 내용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요한 묵시록이 라오디케이아 교회를 향해 바로 그 미지근한 신앙을 언급하고 있다.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 3,16)

바오로 사도와 에파프라스, 요한 사도, 그리고 요한 사도 제자들의 노력으로 라오디케이아는 각성한다. 라오디케이아는 이후 100년대 중반에 성당을 세웠고 주교님(사르기스 주교)까지 모시는 큰 교회로 성장한다. 300년대 중반에는 대형 성당이 건축됐는데, 2010년에 발굴되었다. 규모가 대단하다. 성당 전체 규모만 세로 약 70m 가로 30m에 이른다. 성당에는 세례 경당과 대형 제대, 화려한 모자이크 작품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특히 세례 터가 눈길을 끄는데, 아마도 세례와 관련한 가장 오래된 유적이 아닐까 싶다. 십자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사람 몸 하나가 통째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서기 494년 지진으로 성당이 파괴되었을 때도 이 세례 터는 멀쩡했다고 한다. 또 라오디케이아 대성당에서 약 100m 떨어진 곳에서 경당과 정원을 갖춘 2층 대저택(신자 귀족 개인 가정집, 혹은 고위 성직자 저택으로 추정)까지 발굴되었다. 과거의 화려함과 영화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도시는 무너졌고, 대성당은 기둥과 세례 경당, 모자이크만 파편적으로 남았다. 그 2000년 세월을 담은 폐허가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신앙에 대한 경고’였다.

 
사르디스 교회 유적

사르디스(σαρδισ)

희랍어에 ‘체력 단련장’을 의미하는 ‘긴나시온’(γυμνασιον)이라는 단어가 있다. 그런데 긴나시온은 단순히 근육만 키우는 헬스클럽이 아니었다. 고대에는 체력 단련장에서 학문도 배우고, 인성도 함양했다. 지덕체(智德體)를 겸비한 인간을 길러내는 종합 교육기관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독일의 중등교육기관 ‘김나지움’ (Gymnasium)이 여기에서 유래한다.

요한 묵시록에 언급되는 초기 일곱 교회 중 하나인 사르디스에서 로마 시대 대형 체력장(김나지움, 서기 200년경 설립)이 미국 고고학 팀에 의해 1960년대 후반 발굴됐다.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선 대형 유대교 회당도 발굴됐다. 대형 체력장과 유대교 공동체가 있었다는 것은 당시 사르디스가 제법 큰 도시 규모를 갖추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큰 도시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전파되지 않았을리 없고, 당연히 큰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지금도 사르디스 유적 곳곳에서 대형 십자가 문양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사르디스 신자들은 어떤 신앙생활을 이어갔을까. 요한 묵시록에는 사르디스 신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 나온다. 동시에, 그 유명한 흰옷 입은 사람에 대한 내용도 나온다. 요한 묵시록의 그리스도는 당시 사르디스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들었는지 되새겨, 그것을 지키고 또 회개하여라. 네가 깨어나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가겠다. 너는 내가 어느 때에 너에게 갈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사르디스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몇 있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다.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승리하는 사람은 이처럼 흰옷을 입을 것이다.”(묵시 3,3-5)
 
필라델피아 성 요한 대성당 유적


필라델피아(φιλαδελφεια)

미국에 있는 필라델피아가 아니다. 알라셰히르(Alasehir)로 불리는 튀르키예의 작은 중소도시. 셰히르가 ‘마을, 도시, 동네’라는 뜻이니까 알라셰히르는 알라의 마을, 즉 신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 신의 마을 옛 이름이 필라델피아다.(묵시 3,7-13 참조)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필라델피아의 인상은 ‘열심한 신앙’이다. 필라델피아는 유아세례 받은 사람보다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세례 1년차 신자를 떠올리게 한다. 필라델피아는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 늦게 신앙을 받아들였고 교세도 작았지만 다른 어떤 교회보다 신앙에 충실했다. 주위 도시들이 오스만 투르크에 줄줄이 점령당할 때도 필라델피아만은 신앙의 힘으로 똘똘 뭉쳐 14세기에 이르기까지 믿음을 유지했다. 그래서일까.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 혼나지 않은 교회는 스미르나와 필라델피아 둘 뿐이다. 심지어 필라델피아 교회는 칭찬까지 받는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보라, 나는 아무도 닫을 수 없는 문을 네 앞에 열어 두었다. 너는 힘이 약한데도, 내 말을 굳게 지키며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묵시 3,8) 그 칭찬에 뒤따르는 보상은 크다. “온 세계에 시련이 닥쳐올 때에 나도 너를 지켜 주겠다. 내가 곧 간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지켜, 아무도 네 화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여라.”(묵시 3,10-11)화관은 승리다. “화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은 승리를 보장해 주시겠다는 말씀이다.

필라델피아에 가면 6세기에 세워진 성 요한 대성당의 거대한 기둥을 만날 수 있다. 기둥 안쪽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바닥에 뒹굴고 있는 많은 비석을 볼 수 있다.(그리스도교 국가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성당 안, 비석의 주인들. 그들은 약속받은 사람들이었다. 화관을 빼앗기지 않고 승리한, 천상행복을 누리고 있을 사람들이었다.  

글·사진 _ 우광호 (라파엘,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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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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