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후속 입법 시한인 2020년을 넘어 5년 가까이 관련 법안 발의를 내버려둔 국회의원들의 태만에 헌법적 심판을 요청하는 헌법소원이 청구됐다. 낙태죄 후속 입법을 하지 않는 국회를 대상으로 낙태의 직접 피해 당사자로서 남성 배우자가 입법부작위 위헌확인을 요청하는 헌법소원 청구해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관련 청구자는 본지 1830호(10월 19일자)에서 부부싸움 후 상의 없이 낙태하고 온 아내로 인해 아이를 잃은 사연에 소개된 박 프란치스코(가명, 44)씨다. 박씨는 10월 22일 “법률대리인을 통해 헌법심판청구서를 전자로 접수했다”고 밝혔다. 2025헌마1434호 입법부작위 위헌확인이다. 박씨는 그간 관련 헌법소원 준비 기간을 지내왔지만, 본지 기획이 보도되자마자 행동에 임한 것이다.
본지가 입수한 청구서에 따르면, 박씨는 2023년 10월 23일 부부싸움을 한 아내가 말도 없이 낙태하고 와 뱃속에 있던 아이를 잃었다.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기대에 부풀어 있던 것도 잠시, 박씨의 아내는 부부싸움 후 임신 15주차에 170만 원을 내고 낙태 수술을 받고 왔다. 병원은 아내와 같이 태아의 보호자인 남편 박씨의 동의는 물론, 뱃속의 한 생명을 살해하는 중대한 결정임에도 숙려 기간 없이 상담 당일 수술을 진행했다. 박씨와 낙태 수술을 직접 결정한 박씨의 아내마저 수술 후 큰 정신적 고통과 죄책감에 시달렸다. 대학병원 신경외과 교수이기도 한 박씨는 한동안 아이를 잃은 충격에 수술도 집도하지 못했다.
이에 박씨는 낙태 수술을 한 병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형사소송은 당시 낙태죄 처벌 조항이 효력을 잃은 상태라 진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1심은 일부 승소, 2심은 패소였다. 마찬가지로 낙태죄 후속 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배상을 인정할 근거가 없어서였다.
박씨는 “헌법재판소가 2019년 낙태죄 처벌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하며 제시한 입법개선 시한인 2020년 12월 31일이 지나도록 태아의 생명권 및 태아의 아버지로서 가지는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합리적인 내용의 입법을 하지 않은 부작위는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행복추구권·평등권 및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권리를 침해한 것이므로 위헌임을 확인하고자 한다”고 청구 취지를 밝혔다.
국회의 입법 태만이 헌법 제10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되는 인격권과 헌법 제36조 1항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권리, 헌법 제11조 제1항 평등권을 침해하는지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박씨는 “헌재의 결정 취지에 따라 생명권과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태아 아버지의 기본권 등을 조화롭게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법률을 제정해야 할 구체적인 입법 의무가 발생했음에도 입법자들은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헌법소원은 청구서 접수 후 재판관 3명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가 사전 심사해 청구가 합당하다고 판단하면 전원재판부로 넘겨 본격적으로 심리하지만, 청구의 적정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각하한다. 하지만 낙태 여성 당사자가 아닌 배우자이자 친권을 가질 부친으로서 태아의 생명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박씨의 헌법소원이 심리에 부쳐지면 낙태 수술 전 보호자로서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남성의 권리와 그 가치가 새롭게 조명받을 수 있다.
박씨는 “임신과 출산·낙태는 오로지 여성만의 일인 것처럼 묘사하는 우리 사회에서 홀로 이미 세상을 떠나 없는 아이를 안고 탱크 앞에 서 있는 심정”이라고 눈물을 훔쳤다.
헌재는 2019년 낙태죄 처벌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모자보건법상 낙태 허용 사유 말고는 모든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것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봤다. 다만 헌재는 여성의 자기결정권만을 고려하라고는 하지 않았다.
헌법재판관들은 판단의 전제에서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며, 생명권은 비록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다 하더라도 인간의 생존본능과 존재목적에 바탕을 둔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로서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기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라며 “모든 인간은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되며, 형성 중의 생명인 태아에게도 생명에 대한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는 123대 국정과제에 이같은 태아의 생명권은 언급하지 않고, ‘낙태 합법화’와 ‘낙태약 도입’만을 명시했다. 논란이 일자 대통령실은 “입법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며, 임신중지 약물의 경우 불법 유통 문제가 있어 이를 제도화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