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9일
교구/주교회의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그분들의 손을 잡고

[월간 꿈CUM] 꿈CUM 수필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출처: 월간 꿈CUM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 분당 요한 성당 요한대학교 교수진과 봉사단 일행이 소록도 피정을 다녀왔다. 버스 안에서부터 강길웅 신부님(한국인으로서는 소록도 첫 사목자)의 강론 테이프를 들으면서, 또 그곳에서 50여 년 봉사하고 칠십 노인이 되어 고국으로 떠나신 두 분 오스트리아 수녀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행은 벌써부터 세속을 떠나 마음이 고요해지기 시작했다. 강길웅 신부님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진다.

“하느님을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편하게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이라면 자기 한 몸 다 부서지더라도 궂은일에 앞장서서 헌신하며 기쁨을 느낍니다.”

맞아요. 내 한 몸 편히 살려고 이리 빼고 저리 빼면 궂은일은 누가 할까요. 다 알면서도 저 같은 사람은 그런 일 엄두도 낼 수 없어, 그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 보내면서 후원금이나 내고 있을 수밖에요.

그곳에 도착하자 방글방글 미소가 아름다운 수녀님이 안내를 맡으셨는데 나균은 절대 전염되지 않으니 염려하지 말라는 말부터 하신다. 그러나 1916년 조선 총독부에서는 격리 치료의 필요를 느끼고 그곳에 ‘자혜의원’을 세워 나환우들을 돌보기 시작했고, 1933년 전국의 나환우들을 소록도로 강제 이주시켰다고 한다. 하늘에서 바라보면 작은 사슴 모양의 땅이라 해서 ‘소록도’(小鹿島)라고 불렸다는 섬.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한 상처를 안고 한번 들어오면 죽을 때까지 나갈 수 없었던 섬. 혹독한 일제 치하에서 환부의 아픔보다 더한 채찍의 아픔을 견디면서 불모의 땅을 그림처럼 아름답게 일구어낸 섬. 성치 않은 몸으로 바닷가에서 모래를 져다 날라 손수 벽돌을 찍고 건물을 세우고 공원을 조성하고…. 그분들이 걸어온 길을 듣고 있으니 눈시울이 젖는다.

114만 평의 땅은 오직 1번지와 2번지로 나뉘어 있다고 한다. 1번지에는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소록도병원 직원들이 살고, 2번지에는 환우들이 살고 있다고. 거기에 그들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성당이 있었고, 강길웅 신부님의 아이디어로 그들과 함께 세운 피정의 집이 있었다. 이름도 정다운 ‘아기사슴 교육관!’

우리는 수녀님의 안내로 그곳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여러 가지 눈물겨운 자료들이 많이 있었지만, 1984년 5월 4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방문을 기념한 글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마음으로 친애하는 여러분! 머나먼 길을 떠나 한국에 올 채비를 하면서 이 소록도에 계신 여러분과의 만남을 특별히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아름다운 글을 받은 후로는 더더욱 여러분을 보러 오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과 함께하고, 여러분을 위로하고, 여러분께 내 사랑을 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짧은 체류 일정 중 교황님께서 그곳을 방문하신 사건은 당시 큰 뉴스였다. 티브이를 통해서 맨손으로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 큰 사랑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기쁨이되었을까.

우리는 이튿날 아침 환우들과 함께 미사를 드렸다. 그들은 언제나 한 시간 전에 성당에 나와 묵주기도를 바친 뒤, 미사를 드린다고 한다. 우리가 성당에 들어가니 이미 그분들은 다 와서 좌정하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어떤 여성 환우 옆으로 가서 앉았다. 체구도 작은 할머니였는데, 손가락을 보니 성치 못했고, 얼굴도 찌그러져 있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 일부러 손을 잡아 드렸다. 교황님도 잡았던 손이 아닌가.


미사 후, 그날 환우 대표가 드린 기도가 오래오래 마음에 남았다.

“갖은 고생을 무릅쓰고 울다울다 지친 몸으로 이 동산을 만들어 살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분당 요한 성당 신자들과 함께 미사 드리는 것도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것인 줄 압니다. 이 만남의 시간이 오늘로 끝날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으로 돌아가도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이분들 가정 가정마다 주님 축복 내려 주시고 그 가정의 자녀들도 세계 도처에서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도록 축복 주소서.”

아아,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구나. 무언가 그들에게 빚을 진 것 같은 생각으로 가슴이 알싸해짐을 어쩌지 못했다.

미사가 끝나자 옆자리 할머니가 바닥에 내려놓은 지팡이를 집으려고 고개를 숙인다. 얼른 집어 드리면서 한마디 건넸다.

“세례명이 어떻게 되시나요? 기도해 드릴게요.”

노인은 ‘아가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아가다 할머니를 사랑으로 안아드렸다.잠시 후 수녀님이 다가오신다. 내 손을 끌고 성가 반주를 해 주신 형제님께로 간다. 나는 얼른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며 치하해 드렸다. 세상에, 손가락이 온전치 못하다. 그 손으로 성가 반주를 그토록 온전하게 해내다니! 자랑스럽기만 하다.

일회성으로 그치지 말고, 돌아가서도 서로를 위해 기도하자는 대표자의 말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글 _ 안 영 (실비아, 소설가, 수원교구 분당성요한본당)
1940년 전남 광양시 진월면에서 출생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장편소설 「영원한 달빛, 신사임당」 「만남, 그 신비」, 소설집 「가을, 그리고 山寺」 「가슴에 묻은 한마디」 「비밀은 외출하고 싶다」, 수필집 「아름다운 귀향」 「나의 기쁨, 나의 희망」 「나의 문학, 나의 신앙」, 시집 「한 송이 풀꽃으로」, 동화 「배꽃마을에서 온 송이」 등을 펴냈다. 2023년 9월, 장편소설 「만남, 그 신비」로 ‘황순원 문학상 작가상’을 수상했다.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가톨릭문인협회 회원이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5-10-2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5. 10. 29

1티모 2장 15절
여자가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지니고 정숙하게 살아가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