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4세 교황과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10월 23일 바티칸 사도궁에서 비공개 회동을 마친 뒤 나란히 나오고 있다. OSV
성공회가 가톨릭교회에서 분리된 지 500년 만에 교황과 영국 국왕이 함께 기도를 바쳤다.
레오 14세 교황은 10월 23일 교황청 시스티나 경당에서 바티칸을 국빈방문한 찰스 3세 영국 국왕 내외가 자리한 가운데 정오 삼종기도와 에큐메니컬 기도를 주례했다. 이번 기도 주제는 에큐메니즘(교회 일치)과 창조물 보호였다.
교황과 영국 국왕의 회동은 1960년대부터 있었지만, 양 교파 수장이 기도를 함께 바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534년 헨리 8세 영국 국왕의 수장령 이후 가톨릭교회와 성공회는 단절됐다. 찰스 국왕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61년 바티칸을 공식 방문한 바 있다. 찰스 국왕은 올 초 프란치스코 교황을 잠시 문병했다.
미사에 앞서 교황과 찰스 3세 국왕은 비공개로 회동해 환경보호와 빈곤 퇴치, 교회 일치 대화 증진에 중점을 둔 대화를 나눴다. 국왕 내외는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과 교황청 외무장관 폴 리차드 갤러거 대주교와도 만났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시스티나 경당 모자이크 ‘전능하신 그리스도’ 축소판을, 찰스 국왕은 성 에드워드 성화를 선물로 나눴다. 교황과 국왕은 기도 후 바티칸 사도궁에서 기후단체 대표들과 지속가능성 간담회에 참석했다.
교황은 이날 기도회에서 찰스 국왕을 성 바오로 대성전의 ‘왕실 협력자(Royal Confrater)’로 승인했다. 버킹엄궁도 이에 화답해 교황에게 훈장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버킹엄궁은 윈저성의 세인트 조지 성당 ‘교황 협력자(Papal Confrater)’로 임명했으며 교황도 이에 동의했다. 또 영국은 외국인에게 수여 가능한 영국 최고 바스 훈장 중 가장 높은 등급인 기사 대십장 훈장을 수여할 예정이다.
영국 주재 교황 대사관은 성명을 통해 “양국 간 선물은 영적 친교에 대한 인정임과 동시에 로마 가톨릭교회와 영국 성공회가 지난 500년 동안 걸어온 여정을 상징한다”고 밝혔다. 버킹엄궁은 “희망의 순례자로서 희년을 같이 걸어나가겠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찰스 국왕은 교회 일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9년 가톨릭과 성공회가 함께 기리는 존 헨리 뉴먼 추기경의 시성식에도 참여했으며, 11월 1일 ‘교회학자’ 선포일에도 자리할 예정이다. 지난 9월에는 영국 내에서 봉헌된 가톨릭 미사에 국왕으로서 400년 만에 참여했다. 에큐메니컬 기도 예식에서도 성 암브로시오의 찬미가 ‘오소서, 성령이여’를 성가대가 불렀는데, 이는 성 뉴먼 추기경이 영어로 번역한 곡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