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는 사반세기 동안 품었던 의구심을 다소 주관적이지만 어느 정도 풀게 되었다. 객관적인 답은 아니지만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운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2001년 가을, 공동체를 나오면서 나는 난생처음 직장을 구해야 했다. 당시 분도출판사에서 중책을 맡으신 신부님을 잘 안다는 지인을 통해 구직의 뜻을 전했다. 그런데 지인은 돌아와 “이야기를 꺼내자 그 신부님이 화를 냈어요”라고 전했다.
순간, ‘그저 안 된다라고 하면 되었을 텐데, 왜 화를 냈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인간관계에 서툴고 둔감한 나는 그분이 화를 낸 이유를 바로 묻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도 그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마음속 수수께끼처럼 가끔씩 뾰족거리긴 했지만, 그 지인에게 묻는 걸 미루다 연락마저 두절돼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얼마 전 우연히 30여 년 전 내가 취재해 월간 「생활성서」에 게재했던 ‘분도출판사 사장 임인덕 신부’라는 기사를 보면서 ‘아차!’ 하는 느낌이 들었다. 10여 년 전 선종하신 임 세바스티안 신부님은 출판물 검열과 압박이 격심했던 군부 정권하의 1970~1980년대에도 꼭 필요한 책이라 판단되면 어떠한 조처도 두려워하지 않고 종교 분야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일반 서적도 꿋꿋이 펴내셨다. 그 엄혹했던 시절,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 절대 아니었다. 당대에 출간된 분도출판사의 책들에 대해 ‘경탄’해 마지않았던 나는 월간지에 임 신부님을 잘 소개하고 싶었다.
매체의 인터뷰에 좀처럼 응하지 않으셨던 임 신부님과 어렵사리 인터뷰 약속을 잡고 신부님에 대한 예비 조사도 나름 촘촘히 한 뒤 그곳 피정의 집에 1박까지 신청하고 왜관 분도 수도원을 찾았다. 임 신부님과 그곳 수사님들은 우리 일행에게 친절과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그러나 임 신부님과의 인터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임 신부님은 자신에 대한 칭찬이나 업적에 관한 질문을 할 때마다 “아, 그거 별거 아닙니다”라는 답만을 되풀이하실 뿐이었다. 기사에 담고 싶은 내용을 모두 그렇게 넘기셨다. 그분의 인품과 덕이 뛰어나시기에 그러한 답이 ‘겸덕(謙德)의 과시’나 ‘가식’이 아님을 알고는 있었다.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하느님 앞에서 정말로 ‘별것 아닌 것’으로 여기시는 진정한 겸손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기는 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질문에 되풀이되는 “별거 아닙니다”라는 답을 듣는 기자로서 그 상황이 무척 난감했다. 그래서 인터뷰 기사에 그 출판사에서 펴낸 책 가운데 ‘겸손’과 관련된 글을 인용하며 그러한 모습이 참 겸손인가? 하는 투정도 슬쩍 담았다. 이제 보니 그건 투정이 아니라 나의 역부족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들먹거림이었다. 그분이 참으로 겸손하셨다면 나는 참으로 교만했다. 본의는 아니었으나 이 기사로 인해 당시 임 신부님과 그곳 수도 가족은 불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랬던 나의 지원이 달갑지 않았을 것 같았다.
다시 보아도 그 인터뷰 기사에는 경박한 교만의 가시가 감춰져 있다. “겸손은 인간을 천사로 만들지만, 교만은 인간을 악마로 만든다”고 했던가. 자신을 모르고 호의를 베푸신 분들께 결례한 그 기사는 아마 독자의 마음까지 불편하게 했을 것 같다. 더구나 그런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 채 사반세기를 살다니 참 부끄럽다. 특별히 이 위령 성월에 이제 주님 품에 계실 그분께 언젠가 만나 함께 웃으며 때늦은 용서를 빌고 싶다는 마음을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