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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우리가 선택하기 전부터 주신 하느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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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는 불교 신자였다. 어린 시절 내가 교회에 다니는 것을 아시고는 “예수님은 부활하신 것이 아니고 쌍둥이셨단다”라고 하시며 감정이 고조되어 말씀하시곤 하셨다. 당시 종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는 무어라 내 생각을 말씀드릴 수가 없었고 “그거 아니에요” 정도로 조심스럽게 말했던 것 같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서 나는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그리고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 시절, 나의 삶은 쉽지 않았다. 중증 장애가 있는 몸으로 대학 생활을 이어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단했다. 강의실을 찾아다니는 일조차 매번 도전이었고, 친구들이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소소한 일상은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방학 때면 시골집에 머물렀는데 대문 밖에도 나가기가 어려웠던 나는 골방에서 새벽까지 불을 켜놓고 깨어 있었고, 낮에도 방 안에 머무는 날이 많았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늦은 밤까지 택시 운전을 하시던 아버지께서 조용히 내 방문을 여시더니 책 한 권을 놓고 가셨다. 천주교 서적이었다. 손님으로 알게 된 교수님이 주셨다고 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예수님 얘기만 나오면 화 아닌 화를 내시던 아버지셨는데…. 그날은 아무 말씀 없이 책만 놓고 가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아버지의 신념을 잠시 내려놓게 했구나’ 싶었다. 혹은 ‘하느님께서 나의 장애를 통해 아버지가 하느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후로도 아버지는 기존 종교 사람들과의 인연을 놓지 않으셨지만, 세례를 받은 우리에게 예전처럼 아버지의 종교를 강요하시지는 않으셨다. 아버지 마음속에 이미 성령님께서 오셨던 것은 아닐까. 비록 머물던 자리를 완전히 바꾸시지는 못하셨지만 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지금도 종종 아버지께서 주시는 사랑을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께서 천국에 가셨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과 함께 계심을 느끼고 있다.


글 _  최은영 소피아(대구대교구 사수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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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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