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2월, 서울 시흥동 산동네에 국제가톨릭형제회(A.F.I) 회원 세 명이 전진상의원·복지관(이하 전진상)의 둥지를 틀었다. 고(故)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요청으로, 아프고 가난한 이들에게 의료 사회복지의 손길을 나누기 위한 걸음이었다.
그들은 약국을 열고 무료 진료소를 개설하고 가정 간호 활동을 벌이며 사각지대에 있는 어려운 이웃들의 벗이 되었다. 의료보험도 없던 시절, 마음의 희망조차 붙들기 힘들었던 이웃들을, 밤을 새워 찾아가 진료하고 약상자를 열어 생명을 건졌다. 그 씨앗은 자라면서 장학사업으로 이어지고 지역아동센터와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등으로 확장됐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자리를 지키는 그들에게서 A.F.I의 영성인 전(全)·진(眞)·상(常) - 온전한 자아 봉헌과 참다운 사랑, 끊임없는 기쁨 - 이라는 이름이 사랑 실천의 언어로 번역됐음을 느낀다.
반세기 동안 전진상의 활동에 동행한 의사, 간호사 등 봉사자의 숫자는 천 명이 넘는다. 10월 25일 열린 50주년 기념식에는 처음 진료를 도왔던 의사에서부터 개원 때부터 지금도 약국 일을 거드는 약사, 콩나물값과 전화비를 아껴가며 수십 년간 후원해 온 이들까지 전진상과 함께 걸어온 얼굴들이 모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당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인간적 공로를 넘어 ‘함께 나눔의 기적’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날 미사를 주례한 이경상 주교는 전진상을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낸 곳’이라고 했다. 그 말처럼, 전진상의 역사는 복음이 문장이 아니라 ‘손길과 발걸음’으로 드러난 이야기 같다. 복지 시스템은 발전했지만, 여전히 제도와 제도 사이의 틈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그들이 살아온 ‘함께 있음’은 여전히 유효한 하나의 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