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4세 교황이 5월 8일 선출 직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는 준비된 문안을 읽었다. 반면 그의 전임자 세 명은 즉석에서 마음으로 우러나온 말을 했다.
그의 연설은 다소 딱딱했기에, 그의 교황 재임기는 특히 비종교 매체들엔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주었다. 나는 “지루할 수는 있지만 그게 곧 흥미롭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때때로 나는 레오 14세 교황이 가장 중대한 현안들을 다룰 때조차 저자세로 접근하고 발언의 힘이 부족하다고 꽤 날카롭게 평한 적이 있다. 특히 탁월한 영성 강론을 현실의 체험과 사건들과 자주 연결하지 않는 점은 답답했다.
물론 그를 다른 교황들, 특히 직전의 프란치스코 교황과 비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의 뚜렷한 차이를 눈치채지 않을 수는 없다. 아르헨티나 예수회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13년 전 선출 직후 군중을 향해 인사했을 때 그는 일상적인 표현인 “Buona Sera!(좋은 저녁입니다!)”라고 시작했다.
한편, 성 아우구스띠노 수도회 출신 미국인으로 오랫동안 페루에서 선교사로 봉사한 레오 14세 교황은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라고 말했다. 이는 교회 전례를 시작할 때 주교가 사용하는 인사말이다. 하지만 새 교황은 이 평화의 인사와 소망이 교회 담장을 훨씬 넘어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평화의 인사가 여러분 마음속으로 들어와, 여러분의 가족과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이, 모든 민족과 모든 땅에 가닿기를 빕니다.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이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지난 6개월 동안 수많은 연설과 담화를 통해 교황이 단지 평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하게 ‘비폭력’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의 품성 자체가 이를 드러내고 증언한다. 온화함과 낮은 어조뿐 아니라, 단어를 신중히 고르는 태도에서도 그렇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관되게 평화를 촉구했고, 날마다 전쟁을 끝내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세계적 분쟁을 선과 악의 단순 구도로 그리거나 교전 당사자들을 ‘착한 편 대 나쁜 편’으로 낙인찍지 않으려 주의했다. 그럼에도 때로는 불쾌하게 들릴 수 있고 그리 평화적이지 않은 표현을 사용했다. 이를테면 그는 낙태를 자주 ‘청부 살인범을 고용하는 것’에 비유하곤 했다. 이는 특히 임신중절이라는 고통스러운 결정을 마주해야 했던 여성들에게 폭력적인 언어다.
한번은 누군가가 어머니를 모욕한다면 코를 한 대 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것 역시 폭력적 언사다. 부부 싸움을 이야기할 때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접시가 날아다닌다고 말하곤 했다. 이는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마초 문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영향일 수도 있다. 동시에 어떤 형태의 폭력을 암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레오 14세 교황은 아주 다르다. 그는 그런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는 전쟁이나 국제 분쟁을 단지 규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전쟁의 패러다임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지금 역사의 이 지점에서 우리의 과제가 단순히 평화를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의 제도들을 준비”하고 “생명, 대화, 상호 존중의 문화”를 가꾸는 일임을 부각한다.
지난 6월 이탈리아 주교 200여 명에게 연설하면서 그는 비폭력이 이러한 대안적 패러다임을 이루는 열쇠라며, 오늘의 세계가 “다른 삶의 방식을 증언하는 비폭력의 증인들”과 “비폭력적 평화구축 과정의 신뢰할 만한 주체들”을 필요로 한다고 역설했다.
레오 14세 교황의 핵심은 분명하다. 방법이자 양식으로서의 비폭력은 우리의 결정과 관계, 행동을 특징짓는 표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0월 22일, 세계 가톨릭 평화운동 팍스 크리스티 인터내셔널 대표단이 교황의 일반 알현에 참석해 ‘국제 가톨릭 비폭력 이니셔티브’에 관해 논의했다. 이 이니셔티브는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승인으로 설립되었다. 이 새 연구센터의 사명은 비폭력에 관한 연구·출판·자료·경험을 교황청과 전 세계 가톨릭교회 지도자들, 공동체, 기관들이 더욱 쉽게 활용하도록 봉사하는 데 있다.
팍스 크리스티 대표단은 이 중요한 새로운 노력에 대한 레오 14세 교황의 지지와 모범, 리더십에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그를 ‘비폭력의 사도’라고 부르며, 단순한 평화 호소를 넘어 비폭력의 증진에 헌신하는 그의 태도가 자신들의 세계적 사명에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했듯, 다소 지루하거나 저자세라는 인상은 절대 흥미롭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레오 14세 교황은 절제된 방식 속에서도 우리에게 가르칠 것이 매우 많다는 점을 점차 드러내고 있다.
글 _ 로버트 미켄스
1986년부터 로마에 거주하고 있으며, 40년 가까이 교황청과 가톨릭교회에 관해 글을 쓰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11년 동안 바티칸라디오에서 근무했다. 런던 소재 가톨릭 주간지 ‘더 태블릿’에서도 10년간 일했으며, ‘라 크루아 인터내셔널’(La Croix International) 편집장(2014~2024)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