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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보는 우리와 우리가 잃어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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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내내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되고 있는 국제학술대회에 참석 중이다. 말라야대학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장 주변의 자판기에 한국의 라면은 한국어 상표 그대로 진열되어 있다. 학술대회장에서 만난 외국 연구자들은 나에게 K-드라마, K-팝, K-푸드의 영향력을 들려준다. 이제 세계 어디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상이리라 짐작하니, 생경하면서도 뿌듯하다.


그러나 이내 씁쓸하다. 그들이 한국에 대해 환상을 가지는 것은 아닌지, 그만큼 우리가 전달하는 메시지가 세계적일 수 있다는 사실에 무거운 책임감도 느껴진다. 동시에 한국을 떠나기 전 학생들과 수업 시간에 다루었던 우리나라의 고독사와 자살 문제가 오버랩된다. 


한국 문화가 세계적인 위상을 누리는 시대에 정작 한국 사회 내부에서는 곪아가는 문제들이 있다. 타국에서 K-문화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경험하면서도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는 이러한 불편한 현실 때문이리라. 다시 말해, 이러한 문화적 성취 뒤에서 우리는 한편으로 인간이 고립되고 생의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는 현실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우리나라만 직면한 것은 아니라는 점도 알 수 있었다. 국가의 정책이 경제 성장에 초점을 맞춰질 때 겪는 문제는 이제 서구를 지나 아시아로 흘러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경제 체제는 이제 세계의 기본 질서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한편으로 물질적 풍요를 경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에 따라 일어나는 많은 문제에 직면한다. 


로고테라피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빅터 프랭클은 1960년대 미국의 한 강연에서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젊은 세대는 영적 가치의 침식을 경험하고 있다”(The Feeling of Meaninglessness, 1967)고 말했다. 우리는 경험적으로도 알고 있다. 인간은 단순히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 육체적이면서 동시에 영적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물질이 중요해지는 세상에서 영적 가치가 외면당하고, 이로 인해 인간은 그 어떤 물질로도 채워지지 않는 실존적 공허를 경험하면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점점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선지자이신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님이 떠오른다. 아마도 한국의 현대사에서 그분의 외침이 여전히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이리라. 그는 오늘도 이렇게 말씀하신 듯하다. “인간 존엄성은 천부적인 것입니다. … 인간을 정치나 경제의 도구로 이용해서도 안 됩니다. 인간은 오히려 정치와 경제 등 그 모든 것의 목적입니다.”(가톨릭언론인협회 정기총회 미사,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1998년 3월 7일) 


그럼에도 우리는 이 사실을 쉽게 망각한다. 흥미롭게도 지금 참석하고 있는 이 국제학술대회에서도 윤리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도, 과학기술의 발전과 기후위기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기본 원리는 윤리에 기초할 수밖에 없음을 모두가 입을 모아 강조한다. 그리고 그 바탕 중의 바탕은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고 존중하는 데 있다. 이를 외면할 때 인간은 다른 인간의 존엄을 판단하려 들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너무 진부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진부한 말을 외면할 수 없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많은 선택권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선택권의 확장은 인간의 존엄을 표방하며 자유를 개인의 욕망 실현으로만 이해하게 만든다. 즉 인간의 존엄이 진리와 분리되어, 자유는 절대화되고 인간의 존엄은 왜곡되어 이해된다. 그리고 시장경제 체제는 이를 활용해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다시금 질문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누구인지 탐구하고 교육해야 함을 강조하면서도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를 실현할 것인가?



글 _ 최진일 마리아 교수(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연구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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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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