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숨결이 짙게 느껴지는 10월, 대전교구 당진본당 ‘늘푸른 성서대학’ 48명의 어르신은 원장 수녀님과 함께 수원교구 어농성지를 순례했다.
떠나긴 전 김경식 미카엘 주임 신부님께서 “오늘 성지에 가셔서 하느님의 은총과 젊은이의 기운을 많이 받고 오시기를 바란다”며 순례객에게 강복을 주셨다.
오전 8시30분 출발해 두 시간여를 달려 성지에 도착하자, 앞에 펼쳐진 넓은 잔디밭과 그곳에 모셔진 예수님상이 두 팔 벌려 순례객들을 반겼다. 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크고 화려한 건물보다는 자연 속에서 기도하고 묵상하며 순교자들과 영성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조용하고 소박한 곳이었다.
우리 삶은, 하느님께 이르는 길 위의 순례와 같다. 모든 길은 십자가 길의 일부이며, 그 길을 걸음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뒤를 끊임없이 따르며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걷는다. ‘누죽걸산’이라는 말이 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의 줄임말이다. 세월의 무게로 허리가 굽어지고 무릎이 몹시 아픈 연세 많은 자매님이 빠짐없이 참여하는 모습도 희생을 나누는 영성일 것이다.
어농성지를 찾은 순례객이 많은 관계로, 성당에서 떨어진 순교자 묘역 앞 야외제대에서 오전 11시에 미사가 봉헌되었다.
성지 전담 윤석희 미카엘 신부님은 강론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성지에는 1795년 을묘박해로 순교한 최초의 밀사 윤유일(바오로)의 동상과 200주년 순교 기념 현양비가 있고,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한 주문모(야고보) 신부 등 순교자 17명의 묘가 자리하고 있어 그분들의 행적과 놀라운 용기에 감탄을 자아내어 머리 숙여 깊이 인사하곤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신앙으로 살아가는 세상에 우여곡절과 어려움이 많으실 겁니다.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았던 순교자들의 신앙이 여러분을 보호하실 겁니다. 순교자들의 도움을 믿으시고 기도와 힘을 받고 가시기 바랍니다.”
미사가 끝난 후 성당으로 이동하여 순교자들에 관한 영상을 관람하였다. 영상은 군중들이 “그리스도를 모독하여라!”, “저 사람을 배반하여라!”라고 외칠 때, 순교 직전 복자 윤유일이 “천만번 죽을지라도 저 십자가 형틀에 묶이신 분을 모독할 수 없소”라고 외친 마지막 신앙 고백을 담고 있었다.
점심 식사 후 십자가 동산에서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기도하였다. 푸른 동산에 모셔진 환하게 웃으시는 성모님의 동상 앞에서 즐거운 게임을 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일정을 마무리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 4,16)
글 _ 김윤구 미카엘(대전교구 당진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