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부 주일학교에서 6학년을 담당하고 있다. 교리 시간에 십계명을 물어봤는데 제대로 대답하는 아이가 없었다. 자모회에서 준비해 준 맛있는 간식을 먹고 나서 식사 후 기도를 하자고 했는데 입을 떼는 아이가 없었다. “다들 첫영성체 했잖아! 세상에, 몇 년 새 다 까먹었어?” 물었더니 명랑한 목소리로 돌아오는 대답. “네!”
성당에서까지 공부 스트레스를 주긴 싫었지만 더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주부터는 지식 전달에 치중한 주입식 교육으로 교리 수업을 해야겠다. 활발한 토론과 잦은 야외 수업,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여 흥미 위주 수업을 하려 했지만 무지몽매한 6학년 아이들을 깨우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흥미보단 지식이다. 지난 1학기엔 교리 시간의 상당 부분을 아이들과의 라포르 형성에 치중했는데 이제 그런 건 건너뛰자. 교리 시작하자마자 바로 본론에 들어가야지. 6학년 아이들을 이렇게 무식한 채로 졸업시켜선 안 된다.
그렇게 결심하고 얼마 안 지났을 때 초등학교 4학년인 우리 집 첫째가 내게 땡깡을 부리기 시작했다. “토요일에 성당 가는 거 싫어. 내 친구들은 토요일에 야구도 하고 자전거도 타는데 나만 못 하잖아.” 아이들이 엄마 따라 토요일을 성당에서 보내서 다행이라는 글을 쓴 게 바로 지난주였는데. 역시 입이, 아니 손이 방정이다. 첫째와 대화한 결과 합의점을 도출했다. 이번 주 토요일만 성당에 가지 않고 친구들과 만나서 놀되, 주일에 따로 미사를 드리기로. 일탈은 이번 한 번뿐이라고.
그 주 토요일, 첫째는 친구들과 놀러 가고 난 둘째, 셋째와 함께 평소처럼 성당에 갔다. 미사를 드리러 온 6학년 친구들이 달리 보였다. 저 아이들도 토요일에 할 일이 얼마나 많겠나. 친구들 만나서 마라탕도 먹어야 하고 인형 뽑기도 해야 하고 학원 숙제도 해야 할 텐데. 그런데도 이렇게 성당에 왔구나. 미사 시작 전 막간을 이용해 스마트폰으로 야구 중계나 보고 SNS를 하고 있지만 성전에 앉아 있는 것만도 기특하다. 스마트폰 화면에 고개를 박고 있는 아이들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OO아, 잘 왔어” 하고 한 명 한 명 인사했더니 아이들이 고개를 들어서 날 바라본다. 서로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쌤, 키링 예쁘죠?”,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주며) 쌤, 제 남편이에요. 인사하세요.”, “얘가 왜 네 남편이야! 내껀데!” 우스갯소리하는 아이들이 오늘따라 귀엽기만 하다. 문득, 준비한 교리 교안을 대폭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계명과 기도문을 정확하게 외우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으리라. 성당에 가면 자신을 예뻐라 하는 선생님들과 신부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교리 시간 내내 빼곡한 빈칸에 답을 채우고 제대로 외웠나 확인하는 대신, 한 명도 빠짐없이 모든 아이가 자신의 이야길 하도록 하자. 이곳에서만큼은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걸 알고 돌아가게 하자. 개인의 고유한 목소릴 지우는 세상에서 성당은 있는 그대로의 너를 드러내도 안전한 곳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그리하여 다음 주 토요일에도 수많은 유혹을 물리치고 성당에 온 우리 6학년 친구들을 만나길 바란다.
글 _ 정신후 블라시아(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