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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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동성당과 서귀포 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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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우면동성당이 철거 위기에 놓였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추진하는 ‘서리풀 2지구 공공주택 건설사업’에 성당과 인근 마을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서울의 주택난 해소를 위한 불가피한 공익사업이라 설명하지만, 신자들과 주민들은 공익의 이름으로 신앙의 터전을 지우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아파트를 건설할 때뿐만 아니라 오래된 동네를 재개발·재건축할 때도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주택 건설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 방식에 있다. 신개발이든 재개발이든 기존의 현황을 세세히 살피고 남겨 보존할 곳과 철거하고 새로 지을 곳을 구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구역 경계 안의 모든 것을 지우고 새로 짓는 거칠고 무자비한 건설 방식을 고수하는 게 문제다.

 

 

존치를 원하는 성당과 식유마을은 구역 경계의 서쪽 끝에 있고, 역시 보존을 바라는 송동마을은 동쪽 끝에 있다. 사업 구역에서 이곳을 제외하거나, 그게 어렵다면 이곳들은 존치하고 나머지 공간에 주택을 지으면 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 강남구 자곡동·세곡동 일대에 추진했던 보금자리주택 사업은 기존 마을을 철거하지 않고 빈 땅에 공공주택을 조성했다. 오래된 옛 동네 단독주택 마을과 3층 다세대주택, 15층 안팎의 아파트들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새로운 주택공급과 오래된 공동체 보존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 선례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 행정은 다시 ‘전면 철거’로 되돌아가고 있다. 왜 그럴까? 더 쉽고 빠르게, 더 많이 짓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서울시와 국토부는 부디 밀어붙이려 하지 말고 성당과 마을 주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지혜롭고 유연한 해법을 찾길 바란다.

 

 

비슷한 일이 제주 서귀포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서귀포 옛 도심을 가로지르는 4.3km 우회도로 건설로 ‘100년 솔숲’이 사라질 위기다. 서귀포 우회도로는 1965년에 도시계획도로로 지정되었다. 60년 전의 도시계획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실행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 사이 서귀포에는 이미 충분한 도로망이 생겼고, 솔숲 일대는 초등학교·도서관·학생문화원 등 문화시설이 모인 보행 중심 생활권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자동차가 쌩쌩 달릴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천천히 걷고 머무는 장소가 되었다.

 

 

그럼에도 행정은 여전히 ‘도로 건설이 곧 발전’이라는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민들이 즐겨 찾는 솔숲과 잔디광장을 밀어내며 넓은 차도를 새로 내려 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인사동 입구의 동헌필방 등 붉은 벽돌의 근대 건축물을 관통하는 도로계획선이 일제강점기에 그어져 2000년대 초까지 남아 있었다. 인사동은 이미 보행자 중심의 문화지구로 자리 잡아 오래된 건물까지 헐어가며 도로를 낼 이유가 없었다. 결국 2000년 ‘인사동 지구단위계획’을 세울 때 도시계획도로를 해제했다. 보행이 우선되는 거리에서 넓은 차로는 필요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샹젤리제 거리도 같은 변화를 겪고 있다. 파리를 상징하는 이 거리는 왕복 8차선의 넓은 도로인데, 안 이달고 시장은 차로를 왕복 4차선으로 대폭 줄이고, 남은 공간을 보행 공간과 녹지로 바꾸는 ‘샹젤리제 정원화’ 계획을 세웠다. 자동차보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이다. 도로를 넓혀야 발전한다는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는 차도를 좁혀야 도시가 살아난다.

 

 

우면동성당과 서귀포 솔숲은 다른 장소이지만 본질은 같다. 하나는 신앙의 숲이고, 다른 하나는 생명의 숲이다. 오랜 시간 공동체의 기억이 배어있는 곳이라면 성당이든, 마을이든, 숲이든 함부로 철거해서는 안 된다. 개발지구 안에도 남겨야 할 섬이 있다.

 

 

성당과 마을과 숲은 단순한 건물이나 나무들이 아니다.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혼이 담긴 장소(Genius Loci)’다. 하느님의 숨결 같은 ‘장소의 혼’이 꼭 지켜지길 바란다.


 

 

 글 _ 정석 예로니모(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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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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