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이사 40,1-2)
제2 이사야 예언자(전통적으로 이사야서는 기록 시기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1-39장을 제1 이사야서, 40-55장을 제2 이사야서, 56-66장을 제3 이사야서라고 부릅니다)가 나라가 망한 뒤 이방 땅으로 유배를 끌려간 유다 백성에게 전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뿌리 뽑힌 당신 백성을 염려하고 위로하시려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들은 이들이 어찌 감동하지 않았겠습니까?
이 말씀의 배경은 기원전 540년경입니다. 기원전 587년 신바빌로니아에 의해예루살렘이 정복당해 나라의 주권을 잃은 지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이 흐른 상태입니다. 특히 철저히 파괴되어 여전히 황폐해진 상태로 남아 있는 성전은 유다 백성에게서 하느님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마저 빼앗아 갔습니다. 성전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가운데 머무시는 처소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유배를 끌려간 유다 백성은 고향에서 추방당한 고통을 겪었으며 이방 땅에서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마저 박탈당하는 시련을 맛보았습니다. 유다 포로들의 비탄을 시편 137편이 증언합니다.
바빌론 강 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생각하며 우네. 거기 버드나무에 우리 비파를 걸었네. 우리를 포로로 잡아간 자들이 노래를 부르라, 우리의 압제자들이 흥을 돋우라 하는구나. “자, 시온의 노래를 한가락 우리에게 불러 보아라.” 우리 어찌 주님의 노래를 남의 나라 땅에서 부를 수 있으랴?(시편 137,1-4)
이들은 더는 시온의 노래, 즉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를 수 없었습니다. 이방 땅에서 하느님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이 극단적인 시련의 시기에 이사야 예언자의 선포가 이루어집니다. 이방 신들의 땅에서 예언자는 이 세상의 주권을 가진 유일한신은 하느님뿐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셨기에,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씌워진 바빌론의 멍에를 벗겨주시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주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예언자의 이 선포를 통해 하느님은 고통 중에 있는 유다 백성을 위로하십니다.
예언자의 선포가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라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시작하는 사실에 주목합시다. 이 말씀은 현재형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로 지금 당신의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직접 반복해서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움직이시겠다고 말입니다.
약속에 충실하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해방을 위해서 한 이방 임금을 이용하십니다.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임금이 바빌로니아를 정복하고 포로로 끌려와 있던 유다 백성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준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키루스는 놀랍게도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돕기까지 합니다.
이 역사적 사건은 하느님께서 온 세상의 하느님이심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바빌로니아보다 강한 페르시아조차 하느님의 도구라면, 당연히 유다가 바빌로니아에 멸망한 것이 하느님의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빌로니아가 유다의 죄를 심판하기 위한 하느님의 도구였다는 사실의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이렇게 이사야의 예언, 즉 하느님의 약속은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위로는 그저 연민을 드러내는 부질없는 말 몇 마디가 아니라 실제로 절망으로부터의 구원을 이루어 내는 힘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앞의 글에서 위로를 가리키는 히브리어에는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느님의 위로로 유다 백성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숨은 곧 생명입니다. 들숨과 날숨의 이어짐이 생명을 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숨이 끊어졌다고 표현하죠.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흙덩이에 숨을 불어넣으시자,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늘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펼치신 분 땅과 거기에서 자라는 온갖 것들을 펴신 분 그곳에 사는 백성에게 목숨을, 그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 숨을 넣어 주신 분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이사 42,5)
하느님의 위로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죽음의 고통을 겪던 유다 백성에게 생명을 돌려주었습니다.
글 _ 함원식 신부 (이사야, 안동교구 갈전마티아본당 주임, 성서신학 박사)
1999년 사제서품 후 성경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 파리 가톨릭대학교(Catholique de Paris)에서 2007년 ‘요나서 해석에서의 시와 설화의 상호의존성’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2017년 ‘욥기 내 다양한 문학 장르들 사이의 대화적 관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삽화 _ 김 사무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건축 디자이너이며, 제주 아마추어 미술인 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 중문, 강정, 삼양 등지에서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Design SAM의 대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