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꿈 CUM]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_ 튀르키예, 그리스 성지 순례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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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발라 성에서 바라본 해안 풍경
바오로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튀어 오르듯 일어섰다. 그리고 소리쳤다. “가야 한다!”
꿈이 아니다. 생생하게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다. 바오로 사도의 얼굴은 지금 흥분으로 붉게 상기되어 있다. 뛰는 심장을 손으로 눌러 진정시켜야 할 정도였다. 그것은 환시였다. 조금 전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유럽 대륙의 마케도니아 사람은 바오로 사도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 카발라 성 니콜라우스 성당(사도 바오로 도착 기념성당) 모자이크. 바오로 사도가 유럽 대륙에 첫발을 내딛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사도 16,9)
1차 전도 여행 이후, 아시아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던 바오로 사도는 즉각 짐을 꾸렸다. 바오로 사도는 조금 전 환시가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확신했다. 마케도니아가 어떤 곳인가. 당시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미지의 땅 아닌가. 바오로 사도는 미련 없이 트로아스(현재 튀르키예 서부, 에게 해안 차낙칼레시 인근) 항구로 달려갔다. 그리고 마케도니아 지방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이후 하루 동안 꼬박 항해를 거친 후 바오로가 도착한 곳은 네아폴리스(Neapolis)였다.
“우리는 배를 타고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트라케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폴리스로 갔다.”(사도 16,11)
트로이 유적, 바오로 사도는 트로이를 출발해 유럽 대륙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바오로 사도는 유럽 대륙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의 손에는 복음이라는 보따리가 들려있었다.
바오로 사도가 유럽 대륙에 첫발을 내디뎠던 네아폴리스는, 현재 그리스 북부 에게해 연안에 위치해 있는 도시 카발라(Kavala)다. 그리스 북부 지방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카발라는 테살로니카에서 동쪽으로 160km 떨어져 있다. 도시 형성 역사가 기원전 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유서가 깊다 보니, 지금도 고대와 중세의 성벽 등 둘러볼 곳 많은 관광지로 유명하다. 외세의 침략을 막아주던 카발라 성벽의 망루에 오르자 2000년 전 바오로를 싣고 왔던 푸른 바다가 한눈에 펼쳐졌다. 잔잔했다. 2000년 전 바오로 사도가 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도 이 바다는 잔잔했을 것이다. 그 바다를 끼고 언덕을 따라 집들이 다닥거리며 자리 잡고 있었다. 집들 사이로 난 골목의 역사도 모두 2000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바오로 사도가 이 해안을 밟으며 상륙하고, 마을 골목을 걷는 모습 상상에 이르자, 2000년 전 바오로 사도의 얼굴에 번졌을 상기된 붉음이 내 얼굴에도 퍼지기 시작했다. 편안한 흥분감 속에서 발아래 펼쳐진 카발라 도심을 둘러보았다. 그때 한 성당 외벽의 모자이크가 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그 반짝임에 이끌려 고성(古城)에서 내려가자마자 성당을 찾았다.
성 니콜라우스 성당(사도 바오로 도착 기념성당) 외벽은 바오로 사도가 카발라에 내리는, 유럽 대륙에 첫발을 딛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바오로 사도의 카발라 상륙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유럽으로 건너간 것은 선교적 차원에서 볼 때, 획기적 전환점이었다. 카발라 상륙이 없었다면 유럽 선교도 없었다. 바오로 사도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해 그리스의 필리피, 테살로니카, 아테네, 코린토 등지로 선교 여행을 떠난다.
카발라 성 니콜라우스 성당 트로이 유적
이같은 바오로 사도의 선교 열정과 관련해 톰 홀랜드(Thomas Holland)는 「도미니언 : 기독교는 어떻게 서양의 세계관을 지배하게 되었는가(Dominion: The Making of the Western Mind」(이종인 옮김, 2020)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바오로는 언제나 자신이 노상의 나그네인 양 발언했다. 매질, 투옥, 해상에서의 난관, 산간에서 도적 떼를 만난 사람으로 말했다. 여행의 이런 다양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을 생각이 없었다. 구세주가 그를 위해 고문을 당하고 목숨을 잃기까지 했는데 어떻게 자신이 그런 위험 따위를 불평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계속 여행길에 나섰다. 삶이 끝나갈 무렵, 바울은 약 1만 6000km를 여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언제나 새로 세워야 할 교회가 있었고 그리스도를 알려야 할 새로운 사람들이 있었다.”
바오로 사도의 카발라 상륙 때 찍힌 발자국은 유럽 선교의 첫발자국이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정작 자신이 첫발을 디뎠던 카발라에는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 카발라보다 더 큰 규모의 도시가 지척에 있었다. 바오로 사도는 좀 더 내륙으로 들어간다.
걸어서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 그곳에 그 유명한 ‘필리피’가 있다. 바오로 사도가 두 다리로 걸어서 갔을 길을 나는 차로 이동했다. 카발라에서 필리피까지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